홍병두(洪秉斗)
[상세내용]
홍병두(洪秉斗)
1884년(고종 21) 2월 13일∼1970년 2월 10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논산시(論山市)이다.
1919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하던 와중에 민족의식에 고무된 홍병두(洪秉斗)는 4월 1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현 대전광역시)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병두는 낫과 가래 등 농기구로 무장하여 군중과 함께 격렬하게 항쟁을 펼쳤지만, 수적열세 때문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를 당하였다.
1920년 3월에는 유창목(兪昌穆)‧이영배(李英培)와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에 소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 도중 다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0년 5월에는 경성복심법원으로 이송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항소를 하였지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으로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愛國章)이 추서되었다.
그의 묘소는 대전광역시에 소재한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1919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하던 와중에 민족의식에 고무된 홍병두(洪秉斗)는 4월 1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현 대전광역시)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홍병두는 낫과 가래 등 농기구로 무장하여 군중과 함께 격렬하게 항쟁을 펼쳤지만, 수적열세 때문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를 당하였다.
1920년 3월에는 유창목(兪昌穆)‧이영배(李英培)와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에 소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 도중 다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0년 5월에는 경성복심법원으로 이송되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항소를 하였지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으로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愛國章)이 추서되었다.
그의 묘소는 대전광역시에 소재한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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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