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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구(李恒九)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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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우당(又堂)
생년1881(고종 18)
졸년1945
시대항일기
본관우봉(牛峰)
활동분야왕실 > 귀족

[상세내용]

이항구(李恒九)
1881년(고종 18)∼1945년. 일제 강점기 귀족. 호는 우당(又堂)이다. 본관은 우봉(牛峰)이고, 본적은 경성부(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옥인정(玉仁町)이다.

대한제국 총리대신(總理大臣)을 지낸 후작 이완용(李完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이승구(李升九)가 있다. 부인은 안동(安東) 출신 김문규(金文圭)의 딸 김진구(金鎭九)이다.

소장 비서감승(小壯 秘書監丞), 승녕부시종(承寧府侍從) 등의 칙임관(勅任官) 재임 시절 문서작성 능력으로 일본에까지 이름을 날렸다. 1924년에 일본 정부의 남작 작위를 받았고, 1937년에 조선귀족 59명이 중심이 된 전쟁협력단체 동요회(同耀會) 회원으로서 국방헌금을 헌납하였다. 1937년 말 지원병훈련소 수료식과 장행회(壯行會)‧봉고제(奉告祭) 등의 제례에도 참가하는 등 일본의 징병 정책에 동참하였다. 1940년에는 일본이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확장해서 개편한 국민총력조선연맹에도 동참하였으며, 1944년에는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

또 1911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 왕족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직제인 이왕직(李王職)의 사무관‧차관‧장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그 공로로 훈2등 서보장(瑞寶章)과 금배 1개, 훈1등 서보장, 훈1등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 등을 받았으며, 그 후 종4위‧정4위‧종3위‧정3위에 서위되었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궁내성(宮內省) 식부직(式部職)을 지낸 장남 이병길(李丙吉)은 형 이승구의 양자로 보내고, 2남 종5위에 서위된 이병주(李丙周)와 3남 이병철(李丙喆) 그리고 딸 이병오(李丙吾)를 두었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24.2.12) 등
매일신보(1943.1.24)
昭和七年 公文雜簒 卷9(內閣 賞勳局, 1932.6)
昭和七年 敍勳 內國人四 卷四(1932) 등
관보(일본내각, 1940.8.19)
조선총독부관보(1940.8.22)

[집필자]

신상범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