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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귀(尹錫龜)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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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81(고종 18)
졸년1950
시대항일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화양면(華陽面) 완포리(完浦里) 334번지

[상세내용]

윤석귀(尹錫龜)
1881년(고종 18)∼1950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교사, 현대 정치가‧반공주의자.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출신지는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화양면(華陽面) 완포리(完浦里) 334번지이나 1922년 전라북도 군산(群山)으로 옮겨 살았다.

경성한영중학교를 수석졸업한 후 한영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13년 중국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독립군으로 활동하던 그는 황포군관학교 2기로 졸업하면서, 김구(金九)의 명령에 의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삼수지국(삼수는 현 만주 부근) 서기로 임명되었다. 1922년 상해 임시정부 국내자금책으로 임명되면서 돌아왔으며, 군산의 멜볼딘여고 교사로 재직하면서 꾸준히 임시정부로 군자금을 모금하여 보냈다. 이후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귀국 준비위원에 임명되어 ‘영신환’이라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김구의 귀국을 돕던 중 해방을 맞이하였다.

해방 후 한국독립당 중앙 집행위원, 건국준비위원회 군산지부장,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군산지부장, 비상국민회 전북 대표의원으로 활동하다, 김구의 명에 의해 1948년 군산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이승만의 요청으로 초대 체신부장관을 지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고향인 충청남도 서천으로 피신하였으며, 군산에서는 반공강연을 하였다. 인민군이 군산에 도착할 즈음 그곳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전주형무소로 옮겨진 후 초대 내각으로 활동한 것이 밝혀져, 인천상륙작전으로 후퇴하는 인민군에 의해 총살되었다.

자녀로 장남 윤여홍 외에 2남 2녀를 두었다.

[참고문헌]

군산시사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