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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朴榮喆)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BC15C601CCA0B1879X0
호(號)다산(多山)
생년1879(고종 16)
졸년1939
시대조선후기
본관충주(忠州)
활동분야경제 > 경제인

[상세내용]

박영철(朴榮喆)
1879년(고종 16) 2월 2일∼1939년 3월 10일. 일제 강점기 경제인‧관료. 호는 다산(多山)이다.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출생지는 전라북도 익산(益山)이다.

부친은 박기순(朴基順)이다.

1898년(광무 2)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 세이죠[成城]학교를 다녔다. 1903년(광무 7)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04년(광무 8) 육군 기병 참위(參尉)로 임관하여 육군무관학교 교관으로 복무하였다. 1905년(광무 9) 기병 부위‧정위로 진급하고 육군유년학교 부관을 지냈다. 1906년(광무 10) 기병 참령으로 진급하면서 경성위수사령부 참모관을 담당하였다. 이후 군부대신 부관‧시종무관 등을 거쳤다. 1908년(융희 2) 한국주차일본헌병대에 파견되었다.

1912년 8월 전역하면서 전라북도 익산군수에 임명되었다. 1918년 9월 함경북도 참여관을 거쳐 1921년 2월부터 전라북도 참여관으로 재직하였다. 1924년 12월 강원도지사로 승진하고, 1926년 8월 함경북도지사로 옮겼다. 관직을 떠나던 1927년 삼남은행두취(頭取) 및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에 취임하고, 내선융화단체인 동민회(同民會)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조선상업은행부두취를 거쳐 1931년부터 사망 때까지 두취로 재임하였다. 1928년 조선미곡주식회사 이사, 1932년 조선철조주식회사 이사와 조선신탁주식회사 이사를 지냈다. 1933년 6월부터 칙임관 대우의 중추원참의로 활동하였다. 1934년 조선대아세아협회 상담역과 조선국방의회연합회 상임이사‧시중회(時中會) 이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 8월 조선총독에 국방헌금으로 1만 원을 헌납하였다. 1938년 조선지원병제도제정축하회 실행위원‧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 총무, 1939년 경성부지원병후원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일본의 한국침략과 통치에 협력한 대가로 1907년 훈5등 쌍광욱일장(雙光旭日章),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 1915년 다이쇼[大正]대례기념장, 1919년 훈4등 서보장(瑞寶章), 1926년 훈3등 서보장, 1928년 쇼와[昭和]대례기념장, 1935년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표창, 1939년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 등을 받았다.

[참고문헌]

대한제국관원이력서
조선총독부관보(1912.8.31 외)
敍勳권3
경성일보(1934.4.16외)
매일신보(1938.6.18 외)
동민(同民)제36호(1927.9)

[집필자]

장신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