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상(金然尙)
[상세내용]
김연상(金然尙)
1878년(고종 15) 4월 25일∼1924년 4월 2일. 일제 강점기 관료. 본관은 해풍(海豊)이고, 본적은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익선동(益善洞)이다.
1901년(광무 5) 궁내부우시어(宮內府右侍御)를 거쳐 판임 8등인 좌시어(左侍御)가 되었다. 1905년(광무 9) 판임 7등인 우시어(右侍御)를 지냈다.
1907년(융희 1) 평안남도 중화군수(中和郡守)를 지냈고 1908년(융희 2) 숙천군수(肅川郡守)가 되었다. 1910년(융희 4)에는 조선총독부 아래서 평안남도 숙천군수로 재임용되었다.
1914년부터 약 1년간 조선총독부 평안남도 강서군수(江西郡守)를 지냈으며, 이후 경기도 개성군수(開成郡守)‧연천군수(漣川郡守)를 역임하였다.
1921년 4월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가 되어 주임관 대우로 1924년 4월 사망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1912년 8월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01년(광무 5) 궁내부우시어(宮內府右侍御)를 거쳐 판임 8등인 좌시어(左侍御)가 되었다. 1905년(광무 9) 판임 7등인 우시어(右侍御)를 지냈다.
1907년(융희 1) 평안남도 중화군수(中和郡守)를 지냈고 1908년(융희 2) 숙천군수(肅川郡守)가 되었다. 1910년(융희 4)에는 조선총독부 아래서 평안남도 숙천군수로 재임용되었다.
1914년부터 약 1년간 조선총독부 평안남도 강서군수(江西郡守)를 지냈으며, 이후 경기도 개성군수(開成郡守)‧연천군수(漣川郡守)를 역임하였다.
1921년 4월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가 되어 주임관 대우로 1924년 4월 사망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1912년 8월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대한제국관원이력서
조선총독부관보(1917.10.5) 외
황성신문(1909.1.7)
조선총독부관보(1917.10.5) 외
황성신문(1909.1.7)
[집필자]
김은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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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