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창준(孔昌俊)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CF5CC3DC900B1877X0 |
| 이명(異名) | 공창준(公昌俊) |
| 생년 | 1877(고종 14) |
| 졸년 | 1937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김포(金浦) |
| 활동분야 | 호국 > 독립운동가 |


[상세내용]
공창준(孔昌俊)
1877년(고종 14)∼1937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공창준(公昌俊)이다. 본관은 김포(金浦)이고, 본적은 함경남도 문천(文川)이며, 출신지도 함경남도 문천이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문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 후 홍범도(洪範圖)를 만나 그의 군대와 함께 백두산을 근거로 활동하였으며,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였다. 대종교는 나철이 세웠고 민족종교운동을 통해서 단군교를 다시 정비하여 교단을 만들어 1910년(융희 4)에 이름을 새롭게 한 것이다. 그곳에서 계몽운동에 힘썼으며, 1919년에는 서간도(西間島)의 흥경단(興京團) 단장(團長)이 되었다. 1921년 50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노령(露領) 송황령(宋皇領)에서 활동한 후,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과 연합하여 만주(滿洲) 안도(安圖)에서 활동하였다.
1930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새로 만드는 데 당원(黨員)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1937년 남경(南京)에 있는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에 갔다가 그곳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문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 후 홍범도(洪範圖)를 만나 그의 군대와 함께 백두산을 근거로 활동하였으며,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였다. 대종교는 나철이 세웠고 민족종교운동을 통해서 단군교를 다시 정비하여 교단을 만들어 1910년(융희 4)에 이름을 새롭게 한 것이다. 그곳에서 계몽운동에 힘썼으며, 1919년에는 서간도(西間島)의 흥경단(興京團) 단장(團長)이 되었다. 1921년 50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노령(露領) 송황령(宋皇領)에서 활동한 후,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과 연합하여 만주(滿洲) 안도(安圖)에서 활동하였다.
1930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새로 만드는 데 당원(黨員)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1937년 남경(南京)에 있는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에 갔다가 그곳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수진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