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회근(宋晦根)
[상세내용]
송회근(宋晦根)
1877년(고종 14)∼미상.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성주 출신.
1902년 관직에 올라 종사랑(從仕郞)‧법부주사(法部主事)로 근무하였다.
1919년 프랑스에서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자,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김복한(金福漢) 등 유림계 지도자 137명 중의 한 사람으로 한국독립청원서를 작성, 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그해 3‧1독립운동 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의 이기정(李基定)이 초전면의 송인집(宋仁輯)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할 때,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들은 초전면의 송씨(宋氏) 일족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계획, 준비하여 4월 2일 성주읍 장날을 기하여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는 그날 밤 더욱 거세어져 2명의 사망자를 내는 등 유혈충돌로 발전하였다.
이 시위의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았다.
1902년 관직에 올라 종사랑(從仕郞)‧법부주사(法部主事)로 근무하였다.
1919년 프랑스에서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자,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김복한(金福漢) 등 유림계 지도자 137명 중의 한 사람으로 한국독립청원서를 작성, 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그해 3‧1독립운동 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의 이기정(李基定)이 초전면의 송인집(宋仁輯)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할 때,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들은 초전면의 송씨(宋氏) 일족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계획, 준비하여 4월 2일 성주읍 장날을 기하여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는 그날 밤 더욱 거세어져 2명의 사망자를 내는 등 유혈충돌로 발전하였다.
이 시위의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았다.
[참고문헌]
韓國獨立史(金承學, 獨立文化社, 1965)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집필자]
신재홍(申載洪)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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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