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후(李澈厚)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CA0D6C4B1874X0 |
자(字) | 중가(重可) |
호(號) | 무문헌(無聞軒) |
생년 | 1874(고종 11) |
졸년 | 193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벽진(碧珍)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이대기(李大基) |
조부 | 이계동(李啓東) |
증조부 | 이용신(李龍新) |
저서 | 『무문헌문집(無聞軒文集)』 |
[상세내용]
이철후(李澈厚)
1874년(고종 11)∼1934년.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중가(重可)이고, 호는 무문헌(無聞軒)이다. 본관은 벽진(碧珍)이다.
시조는 고려 태조(太祖) 때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이며 벽진장군(碧珍將軍)을 역임했던 이총언(李悤言)이다. 증조부는 이용신(李龍新), 조부는 이계동(李啓東)이며 부친은 이대기(李大基)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학문에 정진해서 유학에 달통하였는데 항상 문장의 시비를 따지며 강론하는 일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나이가 들어 제자(諸子)들이 청비당(淸閟堂)을 지어 주니 매일 그곳에 거하면서 책 읽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동범계첩(同泛契帖)』에는 그가 쓴 서문이 실려 있으며, 유고집으로는 노근용(盧根容)이 서문을 쓰고 불초(不肖) 남원무(南元珷)와 성순영(成純永)이 발문을 쓴 『무문헌문집(無聞軒文集)』이 전한다.
시조는 고려 태조(太祖) 때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이며 벽진장군(碧珍將軍)을 역임했던 이총언(李悤言)이다. 증조부는 이용신(李龍新), 조부는 이계동(李啓東)이며 부친은 이대기(李大基)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학문에 정진해서 유학에 달통하였는데 항상 문장의 시비를 따지며 강론하는 일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나이가 들어 제자(諸子)들이 청비당(淸閟堂)을 지어 주니 매일 그곳에 거하면서 책 읽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동범계첩(同泛契帖)』에는 그가 쓴 서문이 실려 있으며, 유고집으로는 노근용(盧根容)이 서문을 쓰고 불초(不肖) 남원무(南元珷)와 성순영(成純永)이 발문을 쓴 『무문헌문집(無聞軒文集)』이 전한다.
[참고문헌]
無聞軒文集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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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