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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범(文昌範)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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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72(고종 9)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함경북도 경원

[상세내용]

문창범(文昌範)
1872년(고종 9)∼미상. 항일독립운동가. 함경북도 경원 출신.

일찍이 노령(露領)으로 망명하여 노서아학교(露西亞學校)를 졸업하였으며 러시아어에 능통하였다.

1910년 이후 이상설(李相卨)유인석(柳麟錫) 등과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였고, 1917년경 쌍성(雙城)에서 조직된 노령 한인사회의 대표적 기관인 전로한족중앙총회(全露韓族中央總會)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19년 2월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국내에서 파견된 여운형(呂運亨)과 접촉하기도 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즈음하여 한족중앙총회를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로 개편하여 시베리아간도 지방 독립운동의 총지휘기관으로 삼았다.

3월 1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위운동을 전개하려고 계획하였으나 러시아 당국에 의하여 저지되자, 3월 17일 러시아 당국에 아무런 통고 없이 전격적으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5월 한명서(韓明瑞)김하석(金河錫)남만춘(南滿春)김철훈(金哲勳)김만겸(金萬謙) 등과 함께 고려공산당을 조직하였다.

또한, 원세훈(元世勳) 등을 상해(上海)로 파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절충을 벌이기도 하였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재로한인사회(在露韓人社會)의 대표로 문창범이 교통총장에, 최재형(崔在亨)이 재무총장에 추대되었으나 그는 부임하지 않았다.

같은해 5월 3일 동생 창락(昌洛)으로 하여금 노령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자를 동원하여 항일무력전을 감행하도록 하고, 노령에 군관학교(軍官學校)를 창설하였다.

1921년 3월 1일 만주에 있는 각급 독립군유격대를 편성하여 항일무력전의 전개와 국내의 애국지사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의 기세를 높이기도 하였다. 일설에는 1934년 8월 5일 상해에서 밀정에 의하여 해를 입었다고 하지만 자세한 것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朝鮮社會‧民族運動의 回顧(徐仁均, 1946)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高麗大學校亞細亞問題硏究所, 1962)
大韓國史 1∼12(李瑄根, 新太陽社, 1973)

[집필자]

권대웅(權大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