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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직(李容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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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만(稚萬)
호(號)강암(剛庵)
생년1852(철종 3)
졸년1932
시대조선후기
본관한산(韓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승조(李承祖)
처부조병세(趙秉世)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용직(李容稙)
1852년(철종 3)∼1932년.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치만(稚萬), 호는 강암(剛庵). 사과 이승조(李承祖)의 아들이며, 을사조약 때 분사(憤死)한 조병세(趙秉世)의 사위이다.

1875년(고종 1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설서검열정언응교를 거쳐 사간승지를 지낸 뒤 1890년 이조참의에 올랐다.

1892년 이조참판에 이어 대사성에 보임되고, 1894년 내무협판에 전임되었다가 송도유수로 나갔다.

이듬해 춘천부사로 전임되었다가 1897년 학부협판의 내직으로 전보되고, 다음해 참찬으로 승임되었다.

1900년 찬정(贊政)을 거쳐 1902년 비서경으로 보임되었다가 이어 황해도관찰사로 나갔으며, 이듬해 전라북도관찰사로 전임되었다.

1904년과 1909년 학부대신을 역임하였다.

1910년 한국일본에 강점된 뒤 일본정부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나, 1919년 3‧1운동 때 경학원부제학 재직시 대제학 김윤식(金允植)과 함께 조선독립청원서사건으로 작위를 박탈당하였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淸選考
독립운동사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집필자]

이강칠(李康七)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