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익(南廷益)
[관련정보]
[상세내용]
남정익(南廷益)
생졸년 미상. 조선 말기 관리.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1870년(고종 7)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었다. 또한, 건원릉(健元陵) 등의 왕실 제사 때 예방승지(禮房承旨)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1872년(고종 9)에는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임명되었고, 또한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의주부윤(義州府尹)‧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1879년(고종 16)에 대왕대비의 친영 60돌을 맞아 임금이 표리를 올리고 대사령을 반포하는 예식에 참여하여 재차 품계를 올려 받았다. 1883년(고종 20)에 강원감사(江原監司)로 재직 중 저질렀던 폭정이 암행어사(暗行御史)를 통해 발각되어 원악도(遠惡島)로의 유배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1884년(고종 21)에 사은을 입어 사면되었고, 이후 공조판서(工曹判書)‧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역임하였다.
1870년(고종 7)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었다. 또한, 건원릉(健元陵) 등의 왕실 제사 때 예방승지(禮房承旨)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1872년(고종 9)에는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임명되었고, 또한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의주부윤(義州府尹)‧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1879년(고종 16)에 대왕대비의 친영 60돌을 맞아 임금이 표리를 올리고 대사령을 반포하는 예식에 참여하여 재차 품계를 올려 받았다. 1883년(고종 20)에 강원감사(江原監司)로 재직 중 저질렀던 폭정이 암행어사(暗行御史)를 통해 발각되어 원악도(遠惡島)로의 유배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1884년(고종 21)에 사은을 입어 사면되었고, 이후 공조판서(工曹判書)‧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高宗太皇帝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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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