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직현(金稷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9C1D604B1840X0 |
자(字) | 원명(元明)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부 | 김재홍(金在弘) |

[상세내용]
김직현(金稷鉉)
생졸년 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원명(元明)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김재홍(金在弘)이다.
1888년(고종 25) 별시 문과에 병과 35위로 급제하였고, 삼등현령(三登縣令)‧신천군수(信川郡守)‧진안현감(鎭安縣監)‧임천군수(林川郡守)‧괴산군수(槐山郡守)‧승정원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경상북도관찰사(慶尙北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1900년(광무 4) 관직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풍속을 해치고 재물을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관리들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법질서를 무너트린 관료로 지목되어 전라북도관찰사(全羅北道觀察使) 이완용(李完用), 경상남도관찰사 이은용(李垠鎔), 등과 함께 파면되고 법부(法部)의 조사를 받았다. 그 밖에 해마다 조정에 납부해야 하는 공납미(公納米)를 제때에 납부하지 않은 죄도 함께 물었다. 그러나 특별히 임금의 은혜로 징계받는 것은 면하였다.
부친은 김재홍(金在弘)이다.
1888년(고종 25) 별시 문과에 병과 35위로 급제하였고, 삼등현령(三登縣令)‧신천군수(信川郡守)‧진안현감(鎭安縣監)‧임천군수(林川郡守)‧괴산군수(槐山郡守)‧승정원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경상북도관찰사(慶尙北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
1900년(광무 4) 관직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풍속을 해치고 재물을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관리들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법질서를 무너트린 관료로 지목되어 전라북도관찰사(全羅北道觀察使) 이완용(李完用), 경상남도관찰사 이은용(李垠鎔), 등과 함께 파면되고 법부(法部)의 조사를 받았다. 그 밖에 해마다 조정에 납부해야 하는 공납미(公納米)를 제때에 납부하지 않은 죄도 함께 물었다. 그러나 특별히 임금의 은혜로 징계받는 것은 면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八道總錄
高宗實錄
八道總錄
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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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