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李允先)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724C120B1862X0 |
이명(異名) | 이웅래(李雄來) |
이명(異名) | 이백래(李白來) |
생년 | 1862(철종 13) |
졸년 | 1909(융희 3) |
시대 | 조선후기 |
활동분야 | 의병 |
[상세내용]
이윤선(李允先)
1862년(철종 13)~1909년(융희 3) 5월 20일. 조선 말기 의병. 본적‧출생지는 전라남도 보성(寶城)이다. 다른 이름은 이웅래(李雄來)‧이백래(李白來)이다.
독립운동 당시 주소지는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용문면(龍門面)이다.
1907년 음력 3월 9일 전남 능주(綾州)에서 양회일(梁會一)‧안찬재(安贊在)‧임낙균(林洛均)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1908년 1월부터는 쌍산의소(雙山義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12)에 호남창의소(湖南倡義所)를 결성하고 도대장이 되었다. 이때에는 이백래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동복면(同福面)으로 진출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유형 10년을 선고받고 전라남도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다가 동년 12월 은사방면되었으며, 다시 재기를 도모하여 1908년 1월 전남 능주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서, 복내헌병분파소(福內憲兵分派所)를 습격하여 일본군을 사살하는 등 보성(寶城)‧장흥(長興)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며 활동하다 체포되어 피살되었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독립운동 당시 주소지는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용문면(龍門面)이다.
1907년 음력 3월 9일 전남 능주(綾州)에서 양회일(梁會一)‧안찬재(安贊在)‧임낙균(林洛均)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1908년 1월부터는 쌍산의소(雙山義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12)에 호남창의소(湖南倡義所)를 결성하고 도대장이 되었다. 이때에는 이백래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동복면(同福面)으로 진출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유형 10년을 선고받고 전라남도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다가 동년 12월 은사방면되었으며, 다시 재기를 도모하여 1908년 1월 전남 능주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서, 복내헌병분파소(福內憲兵分派所)를 습격하여 일본군을 사살하는 등 보성(寶城)‧장흥(長興)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며 활동하다 체포되어 피살되었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지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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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