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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제(河龍濟)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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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은거(殷巨)
호(號)약헌(約軒)
생년1854(철종 5)
졸년1919
시대조선후기
본관진양(晉陽)
활동분야무신 > 무신

[상세내용]

하용제(河龍濟)
1854년(철종 5) 6월 29일∼1919년 11월 8일. 조선 말기 무신‧유학자‧항일운동가. 자는 은거(殷巨)이고, 호는 약헌(約軒)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며, 출신지는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이다.

증조부는 하시명(河始明)이고, 조부는 하한조(河漢祖)이다. 부친 하겸락(河兼洛)과 모친 유병두(柳炳斗)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종하(李鍾夏)의 딸 여주이씨(驪州李氏)이다.

17세 때 부친의 명으로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사서(四書) 및 좌씨전(左氏傳) 등을 배우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1872년(고종 9)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884년(고종 21) 의정부공사관(議政府公事官)에 임명된 다음부터 1892년(고종 29)까지 훈련원주부판관첨정(訓鍊院主簿判官僉正)‧선전관총어영초관(宣傳官總禦營哨官)‧의정부공사관(議政府公事官)‧대흥군수(大興郡守)‧삼척진영장(三陟鎭營將)‧격포진첨사(格浦鎭僉使) 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미망인(未亡人)'으로 자처하며, 생을 마칠 때까지 세상에 나아가지 않을 계책을 세웠다.

1919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유림들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보내 천하의 대의(大義)를 보일 것을 결의할 때 동참하였다. 이 사건으로 진주감옥에 갇혔으나 자신의 뜻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항의하였다. 향년이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하홍규(河弘逵)‧하상규(河祥逵)이다.

저서로 『약헌문집(約軒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約軒文集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