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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설(趙鎭卨)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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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43(헌종 9)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양주(楊州)
활동분야문신
조정규(趙正奎)

[상세내용]

조진설(趙鎭卨)
1843년(헌종 9)~미상. 조선 말기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조정규(趙正奎)이다.

1880년(고종 17) 증광시 병과에 17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정언(正言)‧수찬(修撰)‧장령(掌令)‧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1885년(고종 22) 하층민 출신의 총관해방사무(總管海防事務) 이봉구(李鳳九)가 과거시험에 합격한 후 짧은 기간에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역임하고 특별한 공로도 없이 경대부(卿大夫) 반열에 올랐다가 토포사(討捕使)까지 겸임하게 되는 등 지나친 임금의 은혜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2년 동안 대장(大將) 자리에 있으면서 뇌물을 탐하는 등의 불법을 저질러 조정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였다는 탄핵상소를 올렸다. 또 대사헌(大司憲) 조문영(趙文永) 등과 함께 연명차자(聯名箚子)로 죄인 이상록(李上祿)을 엄하게 신문(訊問)하여 국가 기강을 바로잡을 것을 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887년(고종 24) 대사간(大司諫) 조종필(趙鍾弼) 등과 함께 지운영(池運永)과 지석영(池錫永)을 엄하게 신문할 것을 청하고 또 대사헌(大司憲) 김만식(金晩植) 등과 함께 연명차자로 죄인 이재원(李載元)‧심상훈(沈相勳) 등을 잡아들여 신문할 것을 청하였으나 둘 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90년(고종 27) 박호양(朴顥陽)을 석방시키라는 명을 거둬 달라는 연명차자를 올렸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1891년(고종 28) 박호양을 용서해 달라는 청을 올리는 연명차자에 함께 동참하지 않았다가 대간(臺諫)의 체모에 맞지 않게 아무 이유 없이 연명차자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벌을 내려 달라는 상소로 인해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