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영(趙昌永)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C3DC601B1823X0 |
자(字) | 성우(聖愚) |
생년 | 1824(순조 2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조운주(趙雲周) |
[상세내용]
조창영(趙昌永)
1824년(순조 24)~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성우(聖愚)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조부는 승지(承旨) 조종진(趙琮鎭)이고, 부친은 승지 조운주(趙雲周)이다. 외조부는 한용호(韓用鎬)이고, 처부는 홍희시(洪羲始)이다.
1868년(고종 5) 칠원현(漆原縣)에서 현감 조현택(趙顯宅)의 탐학으로 인해 민란이 일어났다. 이때 칠원현감(漆原縣監) 겸 안핵사(按覈使)에 임명되어 해당 지역의 폭동을 무마하는데 전념하였다. 1872년(고종 9)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고, 이후 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881년(고종 18) 대비전에 표리(表裏)를 친상(親上)하는 진하(陳賀)할 때, 대거승지(對擧承旨)의 소임을 수행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이후 진향부사(進香副使)가 되어 중국을 다녀왔다.
조부는 승지(承旨) 조종진(趙琮鎭)이고, 부친은 승지 조운주(趙雲周)이다. 외조부는 한용호(韓用鎬)이고, 처부는 홍희시(洪羲始)이다.
1868년(고종 5) 칠원현(漆原縣)에서 현감 조현택(趙顯宅)의 탐학으로 인해 민란이 일어났다. 이때 칠원현감(漆原縣監) 겸 안핵사(按覈使)에 임명되어 해당 지역의 폭동을 무마하는데 전념하였다. 1872년(고종 9)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고, 이후 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881년(고종 18) 대비전에 표리(表裏)를 친상(親上)하는 진하(陳賀)할 때, 대거승지(對擧承旨)의 소임을 수행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이후 진향부사(進香副使)가 되어 중국을 다녀왔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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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