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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夫娘)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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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기타 > 기생

[상세내용]

부랑(夫娘)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 여장부(女丈夫). 출신지는 평안북도 자성군(慈城郡)이다.

부여씨(夫餘氏) 후손으로, 명나라 말기에 건주위(建州衛)에서 자성군으로 옮겨온 후 대대로 목축과 수렵을 가업(家業)으로 삼았기 때문에 말 타고 활쏘기에 능하였다.

인조(仁祖) 때 인물로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하여 목장의 아이들과 군대를 배열하고 전진(戰陣)을 만들고는 말 위에 올라 아이들을 호령하며 대장으로서 능력과 위엄을 보였다.

사내아이처럼 노는 모습을 본 부모의 걱정으로 서당에 다니며 글을 배웠다.

19세가 되던 해에 장만(張晩)이 도원수(都元帥)로 평양(平壤)에 있었고, 부원수(副元帥) 겸 평안병마절도사(兼平安兵馬節度使) 이괄(李适)은 평안북도 영변(寧邊)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각 고을에 군사를 모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연로한 부친 대신 남장을 하고 이괄의 병영에 들어가 훈련을 받았는데 지식‧호령‧활쏘기‧말 타기‧창쓰는 법 등 모든 것이 월등할 뿐 아니라 재치 있고 민첩하여 초장(哨長)으로 선발되었다.

얼마 후 이괄이 군사를 늘리고 훈련시키는 모습을 보며 난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정탐하여 안주목사(安州牧使) 정충신(鄭忠信)에게 알려 방비하도록 하였으나 이괄이 이미 난을 일으킨 후였다.

정충신이 선봉대장이 되어 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이괄의 무리를 쫓을 때 함께 하면서 지략가(智略家)의 면모를 발휘하여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일조(一助)하였다. 또 정충신에게 금(金)나라 오랑캐들의 세력이 막강해져서 재앙을 예측하기 어려우니 조정과 의논할 것을 당부하였으나, 조정에서는 척화(斥和)만을 일삼으며 안이한 태도로 방비를 하지 않자 이를 안타깝게 여겼다.

1636년(인조 14) 여름 정충신이 세상을 떠나자 3년상을 지내고,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묘향산(妙香山)에 들어갔기 때문에 언제 생을 마감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逸士遺事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