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점(黃仁點)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69C778C810D1802X0 |
생년 | ?(미상) |
졸년 | 1802(순조 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창원(昌原) |
활동분야 | 왕실 > 부마 |
부 | 황자(黃梓) |
처 | 화유옹주(和柔翁主) |
[상세내용]
황인점(黃仁點)
미상∼1802년(순조 2). 조선 영조의 부마. 본관은 창원(昌原).
호조참판 황자(黃梓)의 아들이다.
1751년(영조 27) 영조의 제10녀 화유옹주(和柔翁主)와 혼인하여 창성위(昌城尉)가 되었다. 영조가 죽자 애책문(哀冊文)을 지었다.
1776년(정조 즉위)부터 1793년에 이르기까지 17년 사이에 진하 겸 사은정사(進賀兼謝恩正使) 1회,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 3회, 동지정사 1회, 성절 겸 사은정사(聖節兼謝恩正使) 1회 등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청나라 수도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이 일어나자, 앞서 1784년(정조 8) 동지 겸 사은정사로 연경에 갔을 때 함께 갔던 이승훈(李承薰)이 『천주실의(天主實義)』 등 천주교 관계 서적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사로서 이 사실을 몰랐다 하여 책임추궁을 당하기도 하였다.
호조참판 황자(黃梓)의 아들이다.
1751년(영조 27) 영조의 제10녀 화유옹주(和柔翁主)와 혼인하여 창성위(昌城尉)가 되었다. 영조가 죽자 애책문(哀冊文)을 지었다.
1776년(정조 즉위)부터 1793년에 이르기까지 17년 사이에 진하 겸 사은정사(進賀兼謝恩正使) 1회,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 3회, 동지정사 1회, 성절 겸 사은정사(聖節兼謝恩正使) 1회 등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청나라 수도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이 일어나자, 앞서 1784년(정조 8) 동지 겸 사은정사로 연경에 갔을 때 함께 갔던 이승훈(李承薰)이 『천주실의(天主實義)』 등 천주교 관계 서적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사로서 이 사실을 몰랐다 하여 책임추궁을 당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純祖實錄
璿源系譜
正祖實錄
純祖實錄
璿源系譜
[이미지]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봉호 : "창성위(昌城尉)"에 대한 용례
전거 | 용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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紀年便攷v3 | 貴人趙氏出○下嫁昌城尉黃仁點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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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