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삼(洪益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C775C0BCB1706X0 |
생년 | ?(미상) |
졸년 | 1756(영조 3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태유(洪泰猷) |
조부 | 홍치상(洪致祥)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익삼(洪益三)
미상∼1756년(영조 3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唐]). 효종의 외손인 홍치상(洪致祥)의 손자로, 홍태유(洪泰猷)의 아들이다.
1741년(영조 17)에 정언‧사서를 거쳐 1745년에 부교리‧교리‧헌납을 역임하였다. 그 이듬해 부수찬‧수찬을 거쳐 1747년에 다시 헌납‧사서를 거쳐 필선‧사간을 역임하였다.
주로 언관직에 있으면서 빈민구휼, 군액경감, 왕세자에 대한 서연(書筵)을 속행할 것을 건의하고, 언론개방을 역설하였다.
1750년에 대사간‧승지에 오르고 그뒤 다시 대사간을 역임하고 1756년 창릉(昌陵)의 정자각(丁字閣) 중건당상이 되어 그 공로로 상을 받았다.
그는 효종의 딸 숙안공주(淑安公主)의 증손자로 문식이 뛰어나지는 못하였으나 관직생활에서 청렴결백하고 또 기개가 있어 일처리가 명쾌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1741년(영조 17)에 정언‧사서를 거쳐 1745년에 부교리‧교리‧헌납을 역임하였다. 그 이듬해 부수찬‧수찬을 거쳐 1747년에 다시 헌납‧사서를 거쳐 필선‧사간을 역임하였다.
주로 언관직에 있으면서 빈민구휼, 군액경감, 왕세자에 대한 서연(書筵)을 속행할 것을 건의하고, 언론개방을 역설하였다.
1750년에 대사간‧승지에 오르고 그뒤 다시 대사간을 역임하고 1756년 창릉(昌陵)의 정자각(丁字閣) 중건당상이 되어 그 공로로 상을 받았다.
그는 효종의 딸 숙안공주(淑安公主)의 증손자로 문식이 뛰어나지는 못하였으나 관직생활에서 청렴결백하고 또 기개가 있어 일처리가 명쾌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璿源系譜
璿源系譜
[집필자]
이재호(李載琥)
명 : "익삼(益三)"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