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정식(卓挺埴)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0C1C815C2DDD1884X0 |
이명(異名) | 각지(覺地) |
이명(異名) | 무불(無不) |
생년 | ?(미상) |
졸년 | 1884(고종 21) |
시대 | 조선후기 |
활동분야 | 종교 > 불교인 |
[상세내용]
탁정식(卓挺埴)
미상∼1884년(고종 21). 조선 말기의 승려. 법명은 각지(覺地)‧무불(無不).
1880년대초 개화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던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百潭寺) 소속의 승려로, 1880년경에 서울의 유홍기(劉鴻基)‧김옥균(金玉均) 등과 접촉한 뒤 개화당의 일원이 되었다.
같은해 5월 일본에 밀항하여 동경(東京)의 혼간사(本願寺)소속 센소(淺草別院)에 기숙하면서 메이지일본(明治日本)의 발전상을 목도한 뒤 그해 6월에 귀국하였다.
11월에 국왕의 밀명으로 개화당의 일원이며 승려인 이동인(李東仁)과 함께 도일, 주일청국공사 허루챵(何如璋)과 연미사(聯美事)를 논의한 뒤 12월에 귀국하였다.
1883년 6월 김옥균의 수원(隨員)으로 일본을 방문한 다음해 2월에 고베(神戶)에서 죽었다.
1880년대초 개화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던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百潭寺) 소속의 승려로, 1880년경에 서울의 유홍기(劉鴻基)‧김옥균(金玉均) 등과 접촉한 뒤 개화당의 일원이 되었다.
같은해 5월 일본에 밀항하여 동경(東京)의 혼간사(本願寺)소속 센소(淺草別院)에 기숙하면서 메이지일본(明治日本)의 발전상을 목도한 뒤 그해 6월에 귀국하였다.
11월에 국왕의 밀명으로 개화당의 일원이며 승려인 이동인(李東仁)과 함께 도일, 주일청국공사 허루챵(何如璋)과 연미사(聯美事)를 논의한 뒤 12월에 귀국하였다.
1883년 6월 김옥균의 수원(隨員)으로 일본을 방문한 다음해 2월에 고베(神戶)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開化黨硏究(李光麟, 一潮閣, 1973)
開化黨硏究(李光麟, 一潮閣, 1973)
[집필자]
유영익(柳永益)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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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