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창군(綾昌君)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2A5CC3DAD70D1768X0 |
이명(異名) | 이숙(李橚) |
생년 | ?(미상) |
졸년 | 1768(영조 4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왕실 > 종친 |
[상세내용]
능창군(綾昌君)
미상∼1768년(영조 44). 조선 후기의 종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숙(李橚).
1726년(영조 2) 함평군(咸平君)‧함양군(咸陽君) 등과 함께 가자되었다.
그뒤 1739년 종실로서 왕대비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金氏)의 존호를 주청하였다. 같은해 동지 겸 사은사로 부사 이광덕(李匡德)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는데, 이때 왕이 『명사(明史)』 전질을 구해올 것을 명하였으나, 공무로 갔기 때문에 사무(私貿)의 이행을 할 수 없음을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그뒤 1743년에 동지사로 임명된 장계군(長溪君)이 병으로 갈 수 없게 되자 이를 대신하여 다녀왔다.
1748년에는 『국조어첩(國朝御牒)』의 교정당상(校正堂上)이 되어 이의 개정에 참여하였다.
1751년에는 동지사로 부사 신사건(申思健), 서장관 심발(沈撥) 등과 세번째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53년 종실이 궁핍하게 되어 강교(江郊)에 거주하는 자들이 그 가난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을 알리고 긍휼책을 강구해줄 것을 건의하여 이를 시행하게 하였으며, 같은해 영의정 이천보(李天輔)의 상소에 따라 선조(先朝)의 종신(宗臣)으로서 가자되었다.
1726년(영조 2) 함평군(咸平君)‧함양군(咸陽君) 등과 함께 가자되었다.
그뒤 1739년 종실로서 왕대비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金氏)의 존호를 주청하였다. 같은해 동지 겸 사은사로 부사 이광덕(李匡德)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는데, 이때 왕이 『명사(明史)』 전질을 구해올 것을 명하였으나, 공무로 갔기 때문에 사무(私貿)의 이행을 할 수 없음을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그뒤 1743년에 동지사로 임명된 장계군(長溪君)이 병으로 갈 수 없게 되자 이를 대신하여 다녀왔다.
1748년에는 『국조어첩(國朝御牒)』의 교정당상(校正堂上)이 되어 이의 개정에 참여하였다.
1751년에는 동지사로 부사 신사건(申思健), 서장관 심발(沈撥) 등과 세번째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53년 종실이 궁핍하게 되어 강교(江郊)에 거주하는 자들이 그 가난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을 알리고 긍휼책을 강구해줄 것을 건의하여 이를 시행하게 하였으며, 같은해 영의정 이천보(李天輔)의 상소에 따라 선조(先朝)의 종신(宗臣)으로서 가자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집필자]
유승주(柳承宙)
대표명 | 능창군(綾昌君) |
봉호 | 능창군(綾昌君), 능창군숙(綾昌君橚) |
봉호 : "능창군(綾昌君)"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