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선복(具善復)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D6CC120BCF5D1786X0 |
자(字) | 사초(士初) |
생년 | ?(미상) |
졸년 | 1786(정조 10)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능성(綾城)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부 | 구성필(具聖弼) |
[상세내용]
구선복(具善復)
미상∼1786년(정조 10).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사초(士初).
부친은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구성필(具聖弼)이다.
1718년(숙종 44) 무과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랐는데 1748년(영조 24)에는 황해도수군절도사에 취임했으며, 2년 뒤에는 충청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757년 포도대장에 올라 치안유지에 노력하였다. 그뒤 병조판서를 거쳐 의금부판사가 되었다.
은언군(恩彦君)의 아들인 상계군(常溪君)을 지지하여 당시 유력한 인사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며, 벼슬이 점차로 높아짐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방자하게 구는 경향까지 보여 인심을 잃다가 1786년에 죄를 입어 조카인 구명겸(具明謙)과 같이 처벌되었다.
부친은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구성필(具聖弼)이다.
1718년(숙종 44) 무과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랐는데 1748년(영조 24)에는 황해도수군절도사에 취임했으며, 2년 뒤에는 충청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757년 포도대장에 올라 치안유지에 노력하였다. 그뒤 병조판서를 거쳐 의금부판사가 되었다.
은언군(恩彦君)의 아들인 상계군(常溪君)을 지지하여 당시 유력한 인사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며, 벼슬이 점차로 높아짐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방자하게 구는 경향까지 보여 인심을 잃다가 1786년에 죄를 입어 조카인 구명겸(具明謙)과 같이 처벌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正祖實錄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명 : "선복(善復)"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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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