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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영(李春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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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우삼(友三)
호(號)괴은(槐隱)
생년1869(고종 6)
졸년1896(건양 1)
시대조선후기
본관덕수(德水)
활동분야호국 > 의병
출신지경기도 지평(砥平)
공훈건국훈장 국민장

[상세내용]

이춘영(李春永)
1869년(고종 6)∼1896년(고종 33).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경기도 지평(砥平) 출신.

1895년 일제가 민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내리자 통분하여 안승우(安承禹)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지평감역(砥平監役)으로 있는 맹영재(孟英在)를 포섭하여 거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그의 부하 김백선(金伯善)을 설득하여 그가 영솔하고 있던 400여명의 관군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원주를 점령한 뒤 제천으로 진군하여 제천단양청풍충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함으로써 명성을 떨쳤다. 이후 풍기로 진군하다가 친척인 이민옥(李敏玉)의 배반으로 관군의 기습을 받고 패전하였다.

그뒤 부대를 수습하여 충주로 이동하여 유인석(柳麟錫)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재차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춘영부대는 조령을 지키면서 수안보에 있던 일본군병참기지를 습격, 격파하였다.

당시 충주성내에는 수많은 의병들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3개 중대의 병력을 동원하여 충주성을 공격하여왔다. 이 충주성 공방전은 15일간 계속된 전투로서 당시 의병전쟁의 절정을 이룬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용전하다가 수안보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申載洪, 韓國民族運動硏究所, 1971)
의병들의 항쟁(趙東杰, 민족문화협회, 1980)
獨立有功者功勳錄 1(國家報勳處, 1986)

[집필자]

신재홍(申載洪)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