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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영(申海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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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좌영(左永)
자(字)윤일(潤一)
호(號)동범(東凡)
생년1865(고종 2)
졸년1909(융희 3)
시대조선후기
본관평산(平山)
활동분야관료 > 관리
신정선(申正善)
출생지경기도 김포

[상세내용]

신해영(申海永)
1865년(고종 2)∼1909년. 한말의 관리 및 교육자.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좌영(左永). 자는 윤일(潤一), 호는 동범(東凡). 경기도 김포 출생. 신정선(申正善)의 아들이다. 갑오경장 때 관비로 일본에 유학하여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4년간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1898년 중추원 의관(議官)으로 임명되었으며, 같은해 독립협회의 민권운동에서 박영효(朴泳孝)서재필(徐載弼)을 대신(大臣) 후보로 천거한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적도 있었다.

1904년에 탁지부 참사관, 다음해에 학부 편집국장으로 임명되었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의 설립 당시 설립자 이용익(李容翊)이 학교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학부 편집국장으로 있던 신해영에게 일임하자, 그는 2, 3명의 동지와 함께 학교설립을 의논하여 법률‧이재(理財)‧농학‧상학‧공학 등 5개 학과로 된 2년제 전문학교의 창립을 성안하였다.

같은해 5월에 사립보성전문학교로 개교하면서 초대교장에 취임하였으며, 박은식(朴殷植)과 교분이 두터워 서우학회(西友學會)의 운영을 돕기도 하고 최재학(崔在學)의 『실용작문문법』을 함께 교열, 감수하기도 하였다.

1906년 6월에는 4권 2책의 『윤리학교과서』를 편술하여 보성중학교에서 발행하였는데, 이 책은 당시의 대표적인 국민윤리교본으로서 애국심고취를 통하여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국권회복의 의지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1909년 일제 통감부로부터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권회복을 선동하는 불온한 교과서라 하여 발매금지처분이 내려졌다.

한편, 1907년 4월에 재일한국유학생 감독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내왕하였으며, 1909년 9월에 동경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문형만(文炯滿)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