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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희(趙民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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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59(철종 10)
졸년1931
시대조선후기
본관양주(楊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병익(趙秉翼)
공훈훈 1등
공훈팔괘장
공훈태극장

[상세내용]

조민희(趙民熙)
1859년(철종 10) 10월 14일∼1931년 1월 2일.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조병익(趙秉翼)의 아들이다.

27세에 경과증광별시문과에 응시하여 병과로 등제한 뒤 벼슬길에 올랐다.

1887년(고종 24) 홍문관부수찬이 되었고, 1889년 직각권을 거쳐 이듬해 시강원필선이 되었다. 같은해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하고 별시초시(別試初試)시관을 거쳐, 1894년 제1차갑오개혁으로 개편된 공무아문참의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8월 관세사장(管稅司長)을 거쳐 전주부관찰사에 임명되었고, 1897년 비서승이 되었다. 이어 평안남도관찰사, 1899년 평안북도관찰사에 각각 임명되었다.

1900년에는 평안북도관찰사 재직시의 문제로 일시 면직되는 징계를 받았다가 풀려나기도 하였다. 같은해 10월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면서 칙임 3등을 받았고, 11월 법부협판에 임명되었으며, 형법교정관을 겸임하였다.

1901년 군부협판이 되었고, 같은해 3월 특명전권공사에 임명되어 프랑스에 주재하도록 명을 받았다가 다시 미국주재를 명받아 1904년 4월까지 주차미국특명전권공사로 근무하였다.

1904년 다시 주차일본특명전권공사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특명전권공사 재임시의 공으로 훈 3등을 받았다.

1906년 육군부령을 거쳐 경상남도관찰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비서감경을 거쳐 평리원재판장에 임명되어 헤이그특사사건의 처리를 맡기도 하였다. 같은해 9월 승녕부시종장(承寧府侍從長)에 임명되었고, 훈 1등과 팔괘장을 받았다. 그해 11월 다시 승녕부총관에 임명되었고, 1909년 2월 태극장을 받았으며, 8월에 품계가 종1품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國朝榜目
全羅北道誌(鄕土文化硏究會, 1960)

[집필자]

박맹수(朴孟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