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하(鄭元夏)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6D0D558B1855X0 |
자(字) | 성조(聖肇) |
생년 | 1855(철종 6)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영일(迎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기석(鄭箕錫)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원하(鄭元夏)
1855년(철종 6)∼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조(聖肇).
부친은 연안도호부사 정기석(鄭箕錫)이며, 모친은 풍산홍씨이다.
1874년(고종 11)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로에 나아갔다. 홍문관수찬 등의 관직을 거친 뒤 1878년에는 서장관으로서 동지사의 일원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79년 세자시강원 겸사서를 지낸 뒤 이듬해 증광감시 초시의 시관이 되었다.
이때 과장(科場)의 질서가 문란하여 파방됨으로써 고성현에 유배되었으나, 곧 풀러나 다시 관직에 등용되어 1882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다.
1892년 우승지를 지낸 뒤 진급하여 이듬해 사헌부대사헌에 제수되었고, 그뒤 대사간과 대사헌을 한차례씩 더 역임하였다.
조선의 개항기에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사간원‧사헌부의 장관까지 지내기는 하였으나 뚜렷한 행적은 드러나 있지 않다.
부친은 연안도호부사 정기석(鄭箕錫)이며, 모친은 풍산홍씨이다.
1874년(고종 11)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로에 나아갔다. 홍문관수찬 등의 관직을 거친 뒤 1878년에는 서장관으로서 동지사의 일원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879년 세자시강원 겸사서를 지낸 뒤 이듬해 증광감시 초시의 시관이 되었다.
이때 과장(科場)의 질서가 문란하여 파방됨으로써 고성현에 유배되었으나, 곧 풀러나 다시 관직에 등용되어 1882년 사간원대사간에 제수되었다.
1892년 우승지를 지낸 뒤 진급하여 이듬해 사헌부대사헌에 제수되었고, 그뒤 대사간과 대사헌을 한차례씩 더 역임하였다.
조선의 개항기에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사간원‧사헌부의 장관까지 지내기는 하였으나 뚜렷한 행적은 드러나 있지 않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오종록(吳宗祿)
명 : "원하(元夏)"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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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