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익(沈遠翼)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CC6D0C775B1853X0 |
자(字) | 원보(元輔) |
호(號) | 우송(友松) |
생년 | 1853(철종 4) |
졸년 | 194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청송(靑松)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심의광(沈宜光) |
조부 | 심낙서(沈樂書) |
증조부 | 심춘영(沈春永) |
묘소 | 남양주(南楊州) 오남면 양지리 |
[상세내용]
심원익(沈遠翼)
1853년(철종 4)∼1944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보(元輔), 호는 우송(友松).
증조부는 심춘영(沈春永)이고, 조부는 심낙서(沈樂書)이며, 부친은 심의광(沈宜光)이다.
1886년(고종 23)에 병술정시문과(丙戌庭試文科)에 병과(兵科) 4등으로 급제하였다. 가주서(假注書), 삼사문(三事門) 겸 동벽사성(東壁蛇城)을 거쳐 1890년(고종 27)에 수찬(修撰)‧교리(校理)로 제수되었다. 1892년에는 사은동지사(謝恩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갈 때 왕이 청(淸)과 각 나라의 형편을 자세히 염탐할 것을 명하여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서 승정원비서승(承政院秘書丞)으로 임명되었다.
1894년(고종 31)에 좌통례(左通禮)에 이르렀다. 그러나 을미사변(乙未事變) 후 나라를 걱정하며 귀향했고, 일제의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광복 1년 전에 사망했다. 묘는 남양주(南楊州) 오남면 양지리에 있다.
증조부는 심춘영(沈春永)이고, 조부는 심낙서(沈樂書)이며, 부친은 심의광(沈宜光)이다.
1886년(고종 23)에 병술정시문과(丙戌庭試文科)에 병과(兵科) 4등으로 급제하였다. 가주서(假注書), 삼사문(三事門) 겸 동벽사성(東壁蛇城)을 거쳐 1890년(고종 27)에 수찬(修撰)‧교리(校理)로 제수되었다. 1892년에는 사은동지사(謝恩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갈 때 왕이 청(淸)과 각 나라의 형편을 자세히 염탐할 것을 명하여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서 승정원비서승(承政院秘書丞)으로 임명되었다.
1894년(고종 31)에 좌통례(左通禮)에 이르렀다. 그러나 을미사변(乙未事變) 후 나라를 걱정하며 귀향했고, 일제의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광복 1년 전에 사망했다. 묘는 남양주(南楊州) 오남면 양지리에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日省錄
承政院日記
南楊州市誌
日省錄
承政院日記
南楊州市誌
[집필자]
김영진
명 : "원익(遠翼)"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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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