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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운섭(洪運燮)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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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38(헌종 4)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무신
홍현참(洪顯參)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운섭(洪運燮)
1838년(헌종 4)~미상.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증조부는 홍이원(洪履黿)이고, 조부는 홍명석(洪命錫)이며, 부친은 홍현참(洪顯參)이다. 외조부는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유화원(柳和源)이고, 처부는 김낙승(金樂升)이다.

1864년(고종 1) 창경궁 춘당대(春塘臺)에서 실시한 증광문무과전시(增廣文武科殿試)의 무과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하였다. 1868년(고종 5) 포도청종사관(捕盜廳從事官)으로 있던 중, 훈련대장(訓鍊大將)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浩)가 선전관(宣傳官)에 추천하였다. 순천영장(順天營將)으로 있을 때에 지은 죄를, 전라좌도암행어사(全羅左道暗行御史) 여규익(呂圭益)이 들추어내어 벌을 받았다. 1882년(고종 19) 평안감사(平安監司) 장계(狀啓)로, 평안북도 용천부사(龍川府使)로 있으면서 백성들의 재물을 가로챈 죄가 드러나 형구를 찬 채 의금부에 구속되었다. 같은 해 10월, 작은 고을에서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은 것이 지나치게 많으니, 네거리에서 엄히 정강이를 매로 치며 심문한 다음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섬에 가시 울타리를 치고 가두라는 명이 떨어졌다. 1884년(고종 21) 8월 위리안치(圍籬安置)에서 석방되었으며, 12월에 사면(赦免)되었다.

1894년(고종 31) 11월 3일 경리청부령관(經理廳副領官) 겸 안성군수(安城郡守)로서 동학농민전쟁(東學農民戰爭)을 일으킨 해몽(海夢) 전봉준(全琫準)이 충청도 옥천(沃川)에 주둔하고 있을 때 이를 습격하여 동학군 20여 명을 사살하고 6명을 사로잡아 효수하였으며, 11월 16일 동학군 네댓 명을 죽였다. 1895년(고종 32) 안성군지(安城郡誌)에 따르면, ‘3월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죄로 곤장 1백대를 맞고 1등급 감하는 조치를 받았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