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택(張時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A5C2DCD0DDB1833X0 |
자(字) | 윤화(允和) |
호(號) | 창주(蒼洲) |
생년 | 1833(순조 33) |
졸년 | 1900(광무 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인동(仁同)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장유승(張有昇) |
조부 | 장경모(張景模) |
증조부 | 장언방(張彦邦) |
처부 | 신영운(申永運) |
외조부 | 이인묵(李仁黙) |
저서 | 『창주선생문집(蒼洲先生文集)』 |

[상세내용]
장시택(張時澤)
1833년(순조 33)∼1900년(광무 4) 4월 12일.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윤화(允和)이고 호는 창주(滄州)이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증조부는 장언방(張彦邦)이고 조부는 장경모(張景模)이다. 부친은 장유승(張有昇)이다. 외조부는 이인묵(李仁黙)이고 처부는 신영운(申永運)이다.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인으로, 문사(文詞)에 능하여 여러 사람의 추앙을 받았다.
한때 서울에 머물렀는데 일본의 침략에도 조정에서 대책이 없음을 한탄하며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만년에 난국계(蘭菊契)를 만들어 인근의 여러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저서로 『창주선생문집(蒼洲先生文集)』 2책이 있다.
증조부는 장언방(張彦邦)이고 조부는 장경모(張景模)이다. 부친은 장유승(張有昇)이다. 외조부는 이인묵(李仁黙)이고 처부는 신영운(申永運)이다.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인으로, 문사(文詞)에 능하여 여러 사람의 추앙을 받았다.
한때 서울에 머물렀는데 일본의 침략에도 조정에서 대책이 없음을 한탄하며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만년에 난국계(蘭菊契)를 만들어 인근의 여러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저서로 『창주선생문집(蒼洲先生文集)』 2책이 있다.
[참고문헌]
蒼洲先生文集
인동장씨태상경공파중앙종회(http://cafe.naver.com/jbs1129)
인동장씨태상경공파중앙종회(http://cafe.naver.com/jbs1129)
[집필자]
박상수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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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