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李奎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DDCC6D0B1833X0 |
자(字) | 성오(星五) |
시호(諡號) | 장희(莊僖) |
생년 | 1833(순조 33)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부 | 이면대(李勉大)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규원(李奎遠)
1833년(순조 33)∼미상.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오(星五).
이면대(李勉大)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한 뒤 단천부사‧통진부사를 지냈고, 1881년(고종 18) 울릉도검찰사가 되어 섬을 시찰하고 돌아와 울릉도를 포기하지 말 것을 상주하기도 하였다.
이어 경상좌도병마절도사‧어영대장‧총융사를 거쳐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수구파정권이 들어서자 해방총관(海防總管)‧동남제도개척사(東南諸島開拓使)로 임명된 이래 함경남도병마절도사‧제주목사 등을 지냈다.
1894년 개화파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군무아문대신‧안무사(安撫使)‧경성부관찰사‧중추원의관‧궁내부특진관‧함경북도관찰사를 지냈다.
시호는 장희(莊僖)이다.
이면대(李勉大)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한 뒤 단천부사‧통진부사를 지냈고, 1881년(고종 18) 울릉도검찰사가 되어 섬을 시찰하고 돌아와 울릉도를 포기하지 말 것을 상주하기도 하였다.
이어 경상좌도병마절도사‧어영대장‧총융사를 거쳐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수구파정권이 들어서자 해방총관(海防總管)‧동남제도개척사(東南諸島開拓使)로 임명된 이래 함경남도병마절도사‧제주목사 등을 지냈다.
1894년 개화파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군무아문대신‧안무사(安撫使)‧경성부관찰사‧중추원의관‧궁내부특진관‧함경북도관찰사를 지냈다.
시호는 장희(莊僖)이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金甌錄
金甌錄
[이미지]
[집필자]
윤경로(尹慶老)
성명 : "이규원(李奎遠)"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