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영(李冕榮)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A74C601B1832X0 |
이명(異名) | 이면광(李冕光) |
자(字) | 주숙(周叔) |
생년 | 1832(순조 32)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용인(龍仁)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원길(李源吉)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면영(李冕榮)
1832년(순조 32)∼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초명은 면광(冕光). 자는 주숙(周叔). 군수 이원길(李源吉)의 아들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교리‧검교 등을 거쳐 대사성‧이조참의‧승지를 지냈다.
1882년(고종 19)과 그 이듬해에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되어 임오군란 관련자들을 처벌하였다.
특히, 그 중에서 대원군의 심복으로 고관이었던 이회정(李會正)‧임응준(任應準)‧정현덕(鄭顯德) 등을 유배가 아니라 사형에 처하자고 강력히 주장하여 사사(賜死)되도록 하였다. 인창군(仁昌君)을 습봉(襲封)하였고, 충훈부유사당상(忠勳府有司堂上)으로서 감생청(减省廳)의 충훈부 권한축소계획에 반대하였다.
1884년부터 1902년까지는 대사헌‧대사간‧궁내부특진관‧장례원경(掌禮院卿)을 잠시 지냈을 뿐이고 요직에 발탁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1861년(철종 1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교리‧검교 등을 거쳐 대사성‧이조참의‧승지를 지냈다.
1882년(고종 19)과 그 이듬해에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되어 임오군란 관련자들을 처벌하였다.
특히, 그 중에서 대원군의 심복으로 고관이었던 이회정(李會正)‧임응준(任應準)‧정현덕(鄭顯德) 등을 유배가 아니라 사형에 처하자고 강력히 주장하여 사사(賜死)되도록 하였다. 인창군(仁昌君)을 습봉(襲封)하였고, 충훈부유사당상(忠勳府有司堂上)으로서 감생청(减省廳)의 충훈부 권한축소계획에 반대하였다.
1884년부터 1902년까지는 대사헌‧대사간‧궁내부특진관‧장례원경(掌禮院卿)을 잠시 지냈을 뿐이고 요직에 발탁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참고문헌]
哲宗實錄
高宗實錄
文品案
梅泉野錄
高宗實錄
文品案
梅泉野錄
[집필자]
장영민(張泳敏)
대표명 | 이면영(李冕榮) |
성명 | 이면영(李冕榮) |
성명 : "이면영(李冕榮)"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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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