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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복추(張福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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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하(景遐)
호(號)사미헌(四未軒)
생년1815(순조 15)
졸년1900(광무 4)
시대조선후기
본관인동(仁同)
활동분야학자 > 유생

[관련정보]

[상세내용]

장복추(張福樞)
1815년(순조 15)∼1900년(광무 4).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경하(景遐)이고, 호는 사미헌(四未軒)이다.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조부는 장주(張儔)이다.

1881년(고종 18) 천거되었고 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 등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평생 학문만을 탐구하였다.

교유한 인물로 당대 이름난 학자인 이진상(李震相)‧정삼석(鄭三錫)‧김진우(金鎭祐)‧곽종석(郭鍾錫)‧허훈(許薰) 등이 있는데, 이들과는 학파를 이루어 학문적으로 성과를 거두었다.

문집으로 11권의 『사미헌집(四未軒集)』이 전하는데, 문집 가운데 주목할 작품으로 명승지를 두루 여행하며 지은 시(詩), 우산서원(愚山書院)의 재건에 관한 소(疏),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영남남인들의 예학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두루 수용한 「가례보의(家禮補疑)」 등이 있다.

[참고문헌]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예학과 『가례보의(家禮補疑)』(이승연, 2008년,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 2008)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