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현(尹致賢)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CE58D604B1814X0 |
자(字) | 경우(景祐) |
생년 | 1814(순조 1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해평(海平)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윤약렬(尹約烈) |
생부 | 윤경렬(尹經烈) |
[상세내용]
윤치현(尹致賢)
1814년(순조 14)~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경우(景祐)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부사(府使) 윤종지(尹宗之)의 후손으로, 고조는 윤원(尹源)이고, 증조부는 유선(諭善) 윤득부(尹得孚)이며, 조부는 윤지동(尹趾東)이다. 부친은 윤약렬(尹約烈)이고, 모친은 동돈(同敦) 홍이간(洪履簡)의 딸이다. 생부 윤경렬(尹經烈)과 생모 도정(都正) 김이휘(金履徽)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재찬(李在瓚)의 딸이다.
1839년(헌종 5) 인정전(仁政殿)에서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험에 참여하여 강경(講經) 분야의 수석을 차지하였고,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다음 해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27위로 급제하였다.
1844년(헌종 10)에는 권혐(權馦)‧박제선(朴齊璿)‧유치숭(兪致崇) 등과 함께 관록(館祿)에 선발되었다. 1850년(철종 1)에는 암행어사(暗行御史) 김세호(金世鎬)로부터 현풍현감(玄風縣監)으로 재직 중 저질렀던 실정(失政)을 지적당하였고, 1862년(철종 13)에는 집의(執義)로 재직하면서, 김시연(金始淵)의 인품과 죄목을 지적하여 탄핵을 하였다. 이후 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1864년(고종 1)에는 철종의 장례에 섭통례(攝通禮)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이후 우부승지(右副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부사(府使) 윤종지(尹宗之)의 후손으로, 고조는 윤원(尹源)이고, 증조부는 유선(諭善) 윤득부(尹得孚)이며, 조부는 윤지동(尹趾東)이다. 부친은 윤약렬(尹約烈)이고, 모친은 동돈(同敦) 홍이간(洪履簡)의 딸이다. 생부 윤경렬(尹經烈)과 생모 도정(都正) 김이휘(金履徽)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재찬(李在瓚)의 딸이다.
1839년(헌종 5) 인정전(仁政殿)에서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험에 참여하여 강경(講經) 분야의 수석을 차지하였고,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다음 해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27위로 급제하였다.
1844년(헌종 10)에는 권혐(權馦)‧박제선(朴齊璿)‧유치숭(兪致崇) 등과 함께 관록(館祿)에 선발되었다. 1850년(철종 1)에는 암행어사(暗行御史) 김세호(金世鎬)로부터 현풍현감(玄風縣監)으로 재직 중 저질렀던 실정(失政)을 지적당하였고, 1862년(철종 13)에는 집의(執義)로 재직하면서, 김시연(金始淵)의 인품과 죄목을 지적하여 탄핵을 하였다. 이후 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1864년(고종 1)에는 철종의 장례에 섭통례(攝通禮)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이후 우부승지(右副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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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