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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鄭芝潤)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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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정수동(鄭壽銅)
자(字)경안(景顔)
호(號)하원(夏園)
생년1808(순조 8)
졸년1858(철종 9)
시대조선후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사인
저서『하원시초(夏園詩鈔)』

[상세내용]

정지윤(鄭芝潤)
1808년(순조 8)∼1858년(철종 9). 조선 후기의 사인.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안(景顔), 호는 하원(夏園).

왜어역관(倭語譯官)의 가계에서 출생했다. 태어날 때 손바닥에 수(壽)자의 문신이 있었고, 이름 지윤의 ‘지(芝)’가 『한서(漢書)』에 ‘지생동지(芝生銅池)’로 있다고 하여 동(銅)자를 따서 수동(壽銅)이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정지윤은 성품이 자유분방하고 생업을 돌보지 않으며, 사회적인 모순에 불만을 품고 평생을 광인처럼 행세하면서 세상을 유랑하며 살았다. 원래 매우 총명하여 어려운 문장 단번에 깨달을 정도였으나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였고, 숨겨진 언동 속에는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 의식이 깃들어 있었다. 문장과 시를 짓는데 가식적인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배격하고, 기발하고 간결하면서 자연스런 품격을 중시한 위항시인(委巷詩人)으로 성령론(性靈論)을 구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흥근(金興根)김정희(金正喜)조두순(趙斗淳) 등 명사들과 교분이 두터웠고, 재주를 아까워 여겨 도우려 하였으나 거절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50세에 과음으로 인하여 죽었다.

민간전승에서는 그에 관련된 허다한 일화들이 유포되어 평양김선달, 경주정만서 같은 인물들처럼 기발한 술책과 익살꾼으로 유명했다. 문헌설화는 『일사유사(逸士遺事)』에 전하며, 구전설화는 서울을 중심으로 수원‧의정부 등의 중부 지방에 퍼져 있다.

저서로는 『하원시초(夏園詩鈔)』가 있다. 아들인 정낙술(鄭樂述)은 역과(譯科)에 합격한 역관이다.

[참고문헌]

逸士遺事
夏園詩鈔

[집필자]

김영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