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휘림(趙徽林)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D718B9BCB1808X0 |
자(字) | 한경(漢鏡) |
생년 | 1808(순조 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양주(楊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제만(趙濟萬) |
조부 | 조정현(趙廷鉉) |
외조부 | 정기선(鄭基善) |
출생지 | 서울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휘림(趙徽林)
1808년(순조 8)∼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한경(漢鏡). 서울 출생. 조정현(趙廷鉉)의 손자로, 조제만(趙濟萬)의 아들이며, 모친은 정기선(鄭基善)의 딸이다.
1828년(순조 28) 왕세자 황감제(黃柑製)에서 거수(居首)하여 전시(殿試)에 직부되었고, 그 이듬해에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여러 관직을 거쳐 1839년(헌종 5) 충청우도암행어사가 되었는데, 이때 지방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서산군수 송재의(宋在誼) 등 11명의 지방관을 처벌하도록 하였으며, 1854년(철종 5) 대사성에 올랐다.
1860년 이조참판에 취임하였다가 같은해 형조판서로 영전하였으며, 1864년 교정청당상관이 되어 『동문휘고(同文彙攷)』를 속간하였다.
1828년(순조 28) 왕세자 황감제(黃柑製)에서 거수(居首)하여 전시(殿試)에 직부되었고, 그 이듬해에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여러 관직을 거쳐 1839년(헌종 5) 충청우도암행어사가 되었는데, 이때 지방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서산군수 송재의(宋在誼) 등 11명의 지방관을 처벌하도록 하였으며, 1854년(철종 5) 대사성에 올랐다.
1860년 이조참판에 취임하였다가 같은해 형조판서로 영전하였으며, 1864년 교정청당상관이 되어 『동문휘고(同文彙攷)』를 속간하였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哲宗實錄
國朝榜目
哲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대표명 | 조휘림(趙徽林) |
성명 | 조휘림(趙徽林) |
성명 : "조휘림(趙徽林)"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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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