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억(司空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0ACACF5C5B5B1805X0 |
자(字) | 만실(萬實) |
호(號) | 다천(茶泉) |
생년 | 1805(순조 5) |
졸년 | 1841(헌종 7)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효령(孝令)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사공수(司空洙) |
조부 | 사공준(司空焌) |
증조부 | 사공장(司空墇) |
처부 | 이상회(李尙晦) |
외조부 | 홍하원(洪夏源) |
출생지 | 경상북도 적라(赤羅: 지금의 군위군) 구택리(鳩澤里) |
묘소 | 경상북도 의성(義城) 소야방(蘇野坊) 유사산(有司山) |
저서 | 『다천선생문집(茶泉先生文集)』 |
[상세내용]
사공억(司空檍)
1805년(순조 5)∼1841년(헌종 7) 9월 29일. 조선 후기 유학자. 호는 다천(茶泉)이다. 본관은 효령(孝令)이며, 경상북도 적라(赤羅: 지금의 군위군) 구택리(鳩澤里)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사공장(司空墇)이며, 조부는 사공준(司空焌)이고, 부친은 사공수(司空洙)이다. 외조부는 홍하원(洪夏源)이고, 처부는 이상회(李尙晦)이다.
1840년(헌종 6)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8위로 합격하였다. 이에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축하의 글을 주었고, 면재(勉哉) 조연춘(趙然春)은 축하의 시를 주었다.
평소에 몸이 약하여 병을 조리하였는데, 재발하자 아우들에게 집안일을 맡기면서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린 것이니 슬퍼하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경상북도 군위(軍威)의 이병산(梨幷山)에 장례를 하였다가, 1872년(고종 9) 경상북도 의성(義城) 소야방(蘇野坊) 유사산(有司山)으로 옮겼다.
저서로 『다천선생문집(茶泉先生文集)』 2책이 있다.
증조부는 사공장(司空墇)이며, 조부는 사공준(司空焌)이고, 부친은 사공수(司空洙)이다. 외조부는 홍하원(洪夏源)이고, 처부는 이상회(李尙晦)이다.
1840년(헌종 6)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8위로 합격하였다. 이에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축하의 글을 주었고, 면재(勉哉) 조연춘(趙然春)은 축하의 시를 주었다.
평소에 몸이 약하여 병을 조리하였는데, 재발하자 아우들에게 집안일을 맡기면서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린 것이니 슬퍼하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경상북도 군위(軍威)의 이병산(梨幷山)에 장례를 하였다가, 1872년(고종 9) 경상북도 의성(義城) 소야방(蘇野坊) 유사산(有司山)으로 옮겼다.
저서로 『다천선생문집(茶泉先生文集)』 2책이 있다.
[참고문헌]
茶泉先生文集
[집필자]
박상수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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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