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규(朴文逵)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BB38ADDCB1805X0 |
자(字) | 제홍(霽鴻) |
호(號) | 천유자(天游子) |
생년 | 1805(순조 5) |
졸년 | 1888(고종 25)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순창(淳昌)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유형(朴有馨) |
저서 | 『운소산방시초(雲巢山房詩草)』 |
저서 | 『천유집고(天游集古)』 |
[상세내용]
박문규(朴文逵)
1805년(순조 5)∼1888년(고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시인.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제홍(霽鴻), 호는 운소자(雲巢子) 또는 천유자(天游子). 박유형(朴有馨)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한번 글을 읽으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고, 장성한 뒤 채전(菜田)을 경영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으나, 큰 장대(莊臺)를 세우고 첩을 두며 친구들과 매일 술을 마시며 방탕한 생활을 하여 수년 만에 가산을 탕진하였다.
그러나 40세에 이르러 시 공부를 시작하여 고시(古詩) 수만편을 외우고, 근체시(近體詩)에 능하였다.
그의 시는 청나라의 한림(翰林) 동문환(董文煥)으로부터 극찬을 받아, 그의 문명이 청나라에까지 떨치게 되었다.
1887년(고종 24) 개성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특명으로 병조참지에 등용되니, 이때 그의 나이 83세였다. 이듬해 가선대부에 올랐다.
성격이 깨끗하고 허욕이 없었다.
후진에는 윤진우(尹鎭佑)‧김재희(金載熙)‧최중건(崔中建)‧서창동(徐昌東) 등이 있다.
저서로는 『운소산방시초(雲巢山房詩草)』‧『천유집고(天游集古)』가 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한번 글을 읽으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고, 장성한 뒤 채전(菜田)을 경영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으나, 큰 장대(莊臺)를 세우고 첩을 두며 친구들과 매일 술을 마시며 방탕한 생활을 하여 수년 만에 가산을 탕진하였다.
그러나 40세에 이르러 시 공부를 시작하여 고시(古詩) 수만편을 외우고, 근체시(近體詩)에 능하였다.
그의 시는 청나라의 한림(翰林) 동문환(董文煥)으로부터 극찬을 받아, 그의 문명이 청나라에까지 떨치게 되었다.
1887년(고종 24) 개성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특명으로 병조참지에 등용되니, 이때 그의 나이 83세였다. 이듬해 가선대부에 올랐다.
성격이 깨끗하고 허욕이 없었다.
후진에는 윤진우(尹鎭佑)‧김재희(金載熙)‧최중건(崔中建)‧서창동(徐昌東) 등이 있다.
저서로는 『운소산방시초(雲巢山房詩草)』‧『천유집고(天游集古)』가 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崧陽耆舊傳
國朝榜目
崧陽耆舊傳
[집필자]
최용(崔墉)
대표명 | 박문규(朴文逵) |
성명 | 박문규(朴文逵) |
성명 : "박문규(朴文逵)"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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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