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李景在)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CBDC7ACB1800X0 |
자(字) | 계행(季行) |
호(號) | 소은(紹隱) |
시호(諡號) | 문간(文簡) |
생년 | 1800(정조 24) |
졸년 | 1873(고종 10)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한산(韓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희선(李羲先) |
증조부 | 이태중(李台重) |

[상세내용]
이경재(李景在)
1800년(정조 24)∼1873년(고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계행(季行), 호는 송서(松西)‧소은(紹隱). 이태중(李台重)의 증손이며, 현감 이희선(李羲先)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살았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그뒤 규장각직각을 비롯하여 이조참의‧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대사간‧대사헌‧부제학‧한성판윤 등 내외 요직을 역임하고, 1866년(고종 3)에 영의정을 제수받았다.(주1)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후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그와 관련된 기사가 130여건 등장하는데, 대부분 그를 관직에 임명하는 기사이며, 1866년에 서양 배 2척이 한강 하구까지 침입한 사건에 대하여 논하고 그에 대한 방비 및 책임자 처벌을 주장한 몇 가지 외에 중요한 정치적 사건과 관련되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주2)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그뒤 규장각직각을 비롯하여 이조참의‧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대사간‧대사헌‧부제학‧한성판윤 등 내외 요직을 역임하고, 1866년(고종 3)에 영의정을 제수받았다.(주1)
영의정 |
『고종실록』 1866년 4월 13일자 기사 참고. |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후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그와 관련된 기사가 130여건 등장하는데, 대부분 그를 관직에 임명하는 기사이며, 1866년에 서양 배 2척이 한강 하구까지 침입한 사건에 대하여 논하고 그에 대한 방비 및 책임자 처벌을 주장한 몇 가지 외에 중요한 정치적 사건과 관련되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주2)
시호 |
『고종실록』 1874년 12월 17일자 기사 참고. |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명 : "경재(景在)"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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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