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金英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601C21CB1798X0 |
자(字) | 군실(君實) |
호(號) | 석릉(石陵) |
생년 | 1798(정조 22)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이교(金履喬) |

[상세내용]
김영순(金英淳)
1798년(정조 22)∼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군실(君實), 호는 석릉(石陵).
부친은 우의정 김이교(金履喬)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한때는 함경도위유어사(咸鏡道慰諭御使)로 뽑혀 수재(水災)로 고생하는 그곳 주민을 구제하고 위로하였다.
1830년에는 통정대부에 오르고, 1837년(헌종 3)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가 그 이듬해에는 이조참의로 옮겼다.
1839년에는 충청도감사가 되었으며, 5년 뒤에 이조참판이 되면서 순조롭게 승진하여 대사헌을 지낸 다음, 1847년 형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부친은 우의정 김이교(金履喬)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한때는 함경도위유어사(咸鏡道慰諭御使)로 뽑혀 수재(水災)로 고생하는 그곳 주민을 구제하고 위로하였다.
1830년에는 통정대부에 오르고, 1837년(헌종 3)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가 그 이듬해에는 이조참의로 옮겼다.
1839년에는 충청도감사가 되었으며, 5년 뒤에 이조참판이 되면서 순조롭게 승진하여 대사헌을 지낸 다음, 1847년 형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憲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성명 : "김영순(金英淳)"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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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