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균(金鼎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815ADE0B1782X0 |
자(字) | 태수(台叟) |
호(號) | 서어(鋤漁) |
생년 | 1782(정조 6) |
졸년 | 1847(헌종 13)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병익(金炳翼) |
저서 | 『서어유고』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정균(金鼎均)
1782년(정조 6)∼1847년(헌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자는 태수(台叟), 호는 서어(鋤漁). 이조판서 김상용(金尙容)의 후손으로, 부친은 김병익(金炳翼)이다.
1813년(순조 13) 진사가 되고, 1820년 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지평이 되었다.
1822년 경상도 암행어사로 나아가 각 지방의 부사‧현감 등의 치적을 평가하여 상과 벌을 내리도록 건의하였다.
이듬해 왕세자가 섭행(攝行)하고 태묘에 제향할 때 대축(大祝)이 되었으며, 그 공으로 통정대부가 되었다.
1830년 대사간이 되고, 1841년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1845년 대사헌에 이르렀다.
저서에 『서어유고』가 있다.
1813년(순조 13) 진사가 되고, 1820년 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지평이 되었다.
1822년 경상도 암행어사로 나아가 각 지방의 부사‧현감 등의 치적을 평가하여 상과 벌을 내리도록 건의하였다.
이듬해 왕세자가 섭행(攝行)하고 태묘에 제향할 때 대축(大祝)이 되었으며, 그 공으로 통정대부가 되었다.
1830년 대사간이 되고, 1841년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1845년 대사헌에 이르렀다.
저서에 『서어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憲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익환(朴翼煥)
대표명 | 김정균(金鼎均) |
성명 | 김정균(金鼎均) |
성명 : "김정균(金鼎均)"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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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