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규(洪永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C601ADDCB1780X0 |
자(字) | 치호(稚祜) |
생년 | 1780(정조 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부 | 홍이섭(洪履燮) |
[상세내용]
홍영규(洪永圭)
1780년(정조 4)~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치호(稚祜)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감사(監司) 홍명구(洪命耉)의 후손이며, 고조는 현감(縣監) 홍계중(洪啓重)이고, 증조부는 홍익빈(洪益彬)이며, 조부는 이참(吏參) 홍병찬(洪秉纘)이다. 부친 판관(判官) 홍이섭(洪履燮)과 모친 참판(參判) 윤치성(尹致性)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인승(李寅升)의 딸이다.
1829년(순조 29)에는 금상문(金商門)에서 실시된 삼일제(三日製)에 참여하여,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이후 정시에서 병과 29위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에는 김상직(金相稷)‧박승휘(朴承輝)‧이시련(李是鍊) 등과 함께 본관록(本館錄)에 선발되었다. 1839년(헌종 5)에 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로 활동하면서 진위현령(振威縣令) 박장암(朴長馣) 등 잘못을 저지른 지방 수령들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1841년(헌종 7)에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품계를 올려 받았다. 이후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853년(철종 4)에는 아경(亞卿)으로 승진되었다.
감사(監司) 홍명구(洪命耉)의 후손이며, 고조는 현감(縣監) 홍계중(洪啓重)이고, 증조부는 홍익빈(洪益彬)이며, 조부는 이참(吏參) 홍병찬(洪秉纘)이다. 부친 판관(判官) 홍이섭(洪履燮)과 모친 참판(參判) 윤치성(尹致性)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인승(李寅升)의 딸이다.
1829년(순조 29)에는 금상문(金商門)에서 실시된 삼일제(三日製)에 참여하여,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이후 정시에서 병과 29위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에는 김상직(金相稷)‧박승휘(朴承輝)‧이시련(李是鍊) 등과 함께 본관록(本館錄)에 선발되었다. 1839년(헌종 5)에 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로 활동하면서 진위현령(振威縣令) 박장암(朴長馣) 등 잘못을 저지른 지방 수령들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1841년(헌종 7)에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품계를 올려 받았다. 이후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853년(철종 4)에는 아경(亞卿)으로 승진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純祖實錄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純祖實錄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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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