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신(李應信)
[상세내용]
이응신(李應信)
1776년(영조 52)~미상.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거주지는 강원도 원주(原州)이다.
증조부는 이준(李浚)이고, 조부는 이필모(李弼模)이며, 부친은 이노섬(李魯暹)이다.
1819년(순조 19) 식년시 병과에 2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고부재자관(告訃齎咨官)‧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826년(순조 26) 홍문록(弘文錄)을 실시하였는데, 권점(圈點) 3점을 받았고, 1828년(순조 28)에는 홍문록과 도당록(都堂錄)에서 권점 4점을 받았다. 1829년(순조 29) 호조판서(戶曹判書) 김교근(金敎根) 부자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정배된 부호군(副護軍) 심영석(沈英錫)과 심영석의 정배를 풀어줄 것을 건의한 정언(正言) 한진호(韓鎭㦿)를 진도군(珍島郡)으로 귀향보내려 하였다. 이에 양사의 간원들이 심영석의 정배 취소와 김교근 부자의 탄핵을 직언하다가 모두 체차(遞差)되었다. 이때 이응신(李應信)은 옥당(玉堂)의 관원들과 연명차자를 올려 심영석‧한진호의 죄를 사면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불허되었다. 1830년(순조 30) 순조의 명으로 익종이 대리첨정을 할 때 중직에 있으면서도 전권을 행사하고 이조원(李肇源)의 옥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김노경을 탄핵하는 삼사와 의정부의 건의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때, 사간원헌납으로서 김노경의 처벌을 건의하였다.
증조부는 이준(李浚)이고, 조부는 이필모(李弼模)이며, 부친은 이노섬(李魯暹)이다.
1819년(순조 19) 식년시 병과에 2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고부재자관(告訃齎咨官)‧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등을 역임하였다.
1826년(순조 26) 홍문록(弘文錄)을 실시하였는데, 권점(圈點) 3점을 받았고, 1828년(순조 28)에는 홍문록과 도당록(都堂錄)에서 권점 4점을 받았다. 1829년(순조 29) 호조판서(戶曹判書) 김교근(金敎根) 부자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정배된 부호군(副護軍) 심영석(沈英錫)과 심영석의 정배를 풀어줄 것을 건의한 정언(正言) 한진호(韓鎭㦿)를 진도군(珍島郡)으로 귀향보내려 하였다. 이에 양사의 간원들이 심영석의 정배 취소와 김교근 부자의 탄핵을 직언하다가 모두 체차(遞差)되었다. 이때 이응신(李應信)은 옥당(玉堂)의 관원들과 연명차자를 올려 심영석‧한진호의 죄를 사면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불허되었다. 1830년(순조 30) 순조의 명으로 익종이 대리첨정을 할 때 중직에 있으면서도 전권을 행사하고 이조원(李肇源)의 옥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김노경을 탄핵하는 삼사와 의정부의 건의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때, 사간원헌납으로서 김노경의 처벌을 건의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純祖實錄
純祖實錄
[집필자]
이후남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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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