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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회(李文會)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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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주경(主卿)
생년1758(영조 34)
졸년1828(순조 28)
시대조선후기
본관전의(全義)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영배(李永培)
출신지서울

[상세내용]

이문회(李文會)
1758년(영조 34)∼1828년(순조 2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주경(主卿). 서울 출신. 목사 이영배(李永培)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 20세를 전후하여 학문의 폭이 넓고 깊었다. 향천에 의하여 주부로 출사하였다가, 1790년(정조 14) 증광문과에 장원하였다.

1792년 홍문관수찬, 이듬해 교리를 지내고 1795년 공조정랑예문관응교를 역임한 뒤 이듬해 사성을 지냈다.

1802년(순조 2) 승지가 되어서는 조석으로 순조의 곁에서 시종하면서 틈만 있으면 경서를 강의하고 시무를 논하여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잘된 일은 권장하여 충성을 아끼지 않았다.

순조가 그의 인격을 깊이 인식하고 사랑하여 항상 가까운 곳에 두고 하루도 부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 혹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반드시 시신을 시켜 기거를 물었다. 풍채가 아름답고 행동이 단아했으며 주대(奏對) 또한 잘하였다.

특히, 전대에 있었던 중요한 문헌을 연구하여 내용을 소상하게 안 뒤에는 차근차근 왕에게 알려주어 치정에 도움이 되게 하였고, 지나간 시대의 사건들을 분석하여 옳고 그른 것을 미리 판정해두었다가 묻는 말에 거침없이 대답하여 조금도 막힘이 없었다.

또한, 백성의 궁곤을 구호하기 위하여 민폐를 없애도록 건의하였고, 바른말로 직간하여 돌리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야직을 할 때는 반드시 인견한 뒤 선온(宣醞)을 하사하여 위로하고 이야기할 때는 마치 가인들의 상담을 방불하게 하였다.

1820년 이조참판을 지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經山集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대표명이문회(李文會)
문회(文會)
성명이문회(李文會)

성명 : "이문회(李文會)"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景孝殿郎廳先生案仙 參判 李文會 癸酉九月二十九日口傳政以軍職來 同年十二月初
景孝殿郎廳先生案仙 參判 李文會 丁丑八月初六日軍職來 八月初十日移拜 承旨
景孝殿郎廳先生案仙 參判 李文會 乙酉五月二十六日政軍職來
郯述v01正使判府事曺允大副禮參李文會書狀兼掌令韓用儀
貞純王后國恤謄錄n1-1책盡條件追乎 磨鍊爲白齊嘉慶十年四月初三日同副承旨臣李文會次知啓依允一曹啓目今此國恤時諡冊寶自都監內入內出請
貞純王后國恤謄錄n1-1책盡條件追乎磨 鍊爲白齊嘉慶十年四月初三日同副承旨臣李文會次知啓依允
貞純王后國恤謄錄n1-1책盡條件追乎磨鍊 爲白齊嘉慶十年四月十八日同副承旨臣李文會次知啓依允一義禁府了曹爲相考事來五月二十二日午時大
貞純王后國恤謄錄n1-1책各半熟馬一匹賜給 禮房承旨洪羲臣加資入侍承旨李堯憲李文會任厚常宋知濂 堂下執禮應敎金相休各室大祝副修撰趙鎭
孝懿王后國恤草日記箋十通江原道觀察 使臣申在植等箋三通黃海道觀察使臣李文會等 箋四通平安道觀察使臣金履喬等箋十一通咸鏡道 觀
孝懿王后國恤草日記遠鳴箋一通鐵原防 禦使臣李源祖箋一通黃海道觀察使臣李文會箋 一通兵馬節度使臣鄭來升箋一通水軍節度使臣柳相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