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화(鄭在和)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7ACD654B1754X0 |
시호(諡號) | 흥은위(興恩尉) |
생년 | 1754(영조 30) |
졸년 | 1790(정조 1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영일(迎日)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정인환(鄭麟煥) |

[상세내용]
정재화(鄭在和)
1754년(영조 30)~1790년(정조 14). 조선 후기 부마. 시호는 흥은위(興恩尉)이다.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정구하(鄭龜河)이고, 조부는 정유(鄭楺)이며, 부친은 기성부윤(箕城府尹)을 지낸 정인환(鄭麟煥)이다. 부인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딸이자 정조(正祖)의 동복동생인 청선군주(淸璿郡主)이다.
1766년(영조 42년) 청선군주와 결혼하면서 흥은부위(興恩副尉)의 칭호를 받았으나,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홍상성(洪相聖)이 정재화가 사람들을 풀어 감옥에 갇혀있던 죄수를 빼준 일을 고하여 직위를 빼앗겼다.
이후에도 조정의 허락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문제를 일으키자 1783년(정조 7)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홍낙항(洪樂恒)이 상소를 올려 벼슬을 빼앗기고 벼슬아치 명부에서 지워졌다. 이후 1899년(광무 3)에 부인인 청선군주가 청선공주(淸璿公主)로 추증될 때 흥은부위에서 흥은위로 추증되었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정구하(鄭龜河)이고, 조부는 정유(鄭楺)이며, 부친은 기성부윤(箕城府尹)을 지낸 정인환(鄭麟煥)이다. 부인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딸이자 정조(正祖)의 동복동생인 청선군주(淸璿郡主)이다.
1766년(영조 42년) 청선군주와 결혼하면서 흥은부위(興恩副尉)의 칭호를 받았으나,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홍상성(洪相聖)이 정재화가 사람들을 풀어 감옥에 갇혀있던 죄수를 빼준 일을 고하여 직위를 빼앗겼다.
이후에도 조정의 허락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문제를 일으키자 1783년(정조 7)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홍낙항(洪樂恒)이 상소를 올려 벼슬을 빼앗기고 벼슬아치 명부에서 지워졌다. 이후 1899년(광무 3)에 부인인 청선군주가 청선공주(淸璿公主)로 추증될 때 흥은부위에서 흥은위로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민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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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