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록(申顯祿)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D604B85DB1752X0 |
자(字) | 용회(用晦) |
호(號) | 학사(鶴沙) |
생년 | 1752(영조 28) |
졸년 | 1828(순조 28)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고령(高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신현록(申顯祿)
1752년(영조 28)∼1828년(순조 28). 조선 후기 문신‧학자. 자는 용회(用晦)이고, 호는 학사(鶴沙)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부친 신좌권(申佐權)과 모친 허집(許集)의 딸 양천허씨(陽川許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91년(정조 15) 중국으로부터 서양학자가 들어와 천주교세가 널리 퍼지자 이를 근심하여 배척하였다. 1804년(순조 4) 이후 금부도사(禁府都事)‧금오랑동부도사(金吾郞東部都事)‧사포서직장(司圃署直長)‧돈녕부주부(敦寧府主簿) 등을 지냈다. 1805년(순조 5) 덕산현감(德山縣監) 재직 시절 백성들을 진휼하고 구제하는 데 힘썼다.
저서로 『학사집(鶴沙集)』이 있다.
부친 신좌권(申佐權)과 모친 허집(許集)의 딸 양천허씨(陽川許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91년(정조 15) 중국으로부터 서양학자가 들어와 천주교세가 널리 퍼지자 이를 근심하여 배척하였다. 1804년(순조 4) 이후 금부도사(禁府都事)‧금오랑동부도사(金吾郞東部都事)‧사포서직장(司圃署直長)‧돈녕부주부(敦寧府主簿) 등을 지냈다. 1805년(순조 5) 덕산현감(德山縣監) 재직 시절 백성들을 진휼하고 구제하는 데 힘썼다.
저서로 『학사집(鶴沙集)』이 있다.
[참고문헌]
鶴沙集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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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