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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영(沈興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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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계기(季起)
생년1739(영조 15)
졸년1799(정조 23)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심성진(沈星鎭)
생부심형진(沈衡鎭)

[상세내용]

심흥영(沈興永)
1739년(영조 15)~1799년(정조 23).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계기(季起)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심정희(沈廷熙)이고, 조부는 심준(沈埈)이다. 부친은 심성진(沈星鎭)이고, 생부는 심형진(沈衡鎭)이며, 외조부는 조태만(趙泰萬)이다.

1773년(영조 49)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783년(정조 7) 정시에 병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장령(掌令)‧교리(校理)‧부수찬(副修撰)‧헌납(獻納)‧수찬(修撰)‧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위원군수(渭原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781년(정조 5) 합천군수(陜川郡守) 시절 홍수 피해가 심했는데 곡식창고에 둔 곡식을 썩게 둔 죄로 파직되었으나, 1782년(정조 6) 합천군수 시절 홍수 때 빼놓고는 백성들을 아끼며 고을을 다스렸으므로 은전(恩典)을 행해달라는 이조(吏曹)의 청에 따라 가자(加資)되었다. 1788년(정조 12) 대궐 밖에다가 명패(命牌)를 아는 집에 하룻밤을 묵힌 죄가 드러나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 복직되었다. 같은 해에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 민치화(閔致和)를 모함하여 함경북도 삼수부(三水府)로 귀양을 보냈다. 1789년(정조 13) 이재간(李在簡)과 이재협(李在協) 등을 벌 줄 것을 청하다가 임금으로부터 시기와 질투심으로 작은 일의 꼬투리를 잡아 죄를 청한다는 꾸지람을 듣고 전라남도 고금도(古今島)로 유배되었다가 얼마 후 석방되었다. 1794년(정조 18)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별단(別單)을 올렸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正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