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문(姜鳳文)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C15BD09BB38B1735X0 |
| 자(字) | 주서(周瑞) |
| 호(號) | 옥계(玉溪) |
| 생년 | 1735(영조 11) |
| 졸년 | 1815(헌종 14)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진주(晉州) |
| 활동분야 | 기타 > 처사 |

| 부 | 강득위(姜得渭) |
| 저서 | 『옥계유고(玉溪遺稿)』 |

[상세내용]
강봉문(姜鳳文)
1735년(영조 11)∼1815년(헌종 14).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주서(周瑞), 호는 옥계(玉溪).
부친은 강득위(姜得渭)이다.
유홍원(柳弘源)에게서 배웠다. 가문은 비록 한미했지만, 효자로 이름이 높았고, 학문에 힘을 쏟아 그를 따르는 문인이 100여인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저서로 『옥계유고(玉溪遺稿)』가 있다.
『옥계유고』는 1829년(순조 29)에 그의 손자 강주복(姜周福)이 간행하였는데,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적은 「답조석사(答趙碩士)」, 제자들에게 보낸 「여제군(與諸君)」, 조상에 대해 추모한 「족보서(族譜序)」, ‘사익재(四益齎)’라는 서당을 짓게 된 내력 등을 적은 「사익재신창기(四益齋新創記)」, 스승인 유홍원(柳弘源)을 애도하는 「제강포유선생문(祭江浦柳先生文)」, 자신의 일생에 대한 행적을 적은 「유사기략(遺事記略)」, 효행에 대해 포상의 전말을 적은 「효자전(孝子傳)」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친은 강득위(姜得渭)이다.
유홍원(柳弘源)에게서 배웠다. 가문은 비록 한미했지만, 효자로 이름이 높았고, 학문에 힘을 쏟아 그를 따르는 문인이 100여인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저서로 『옥계유고(玉溪遺稿)』가 있다.
『옥계유고』는 1829년(순조 29)에 그의 손자 강주복(姜周福)이 간행하였는데,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적은 「답조석사(答趙碩士)」, 제자들에게 보낸 「여제군(與諸君)」, 조상에 대해 추모한 「족보서(族譜序)」, ‘사익재(四益齎)’라는 서당을 짓게 된 내력 등을 적은 「사익재신창기(四益齋新創記)」, 스승인 유홍원(柳弘源)을 애도하는 「제강포유선생문(祭江浦柳先生文)」, 자신의 일생에 대한 행적을 적은 「유사기략(遺事記略)」, 효행에 대해 포상의 전말을 적은 「효자전(孝子傳)」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문헌]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이승민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