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광(金致光)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CE58AD11B1732X0 |
| 호(號) | 충효당(忠孝堂) |
| 생년 | 1732(영조 8)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광산(光山)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김도명(金道鳴) |
| 조부 | 김영복(金榮復) |
| 증조부 | 김수신(金守信) |
| 외조부 | 기정기(奇挺夔) |
| 출신지 | 전라남도 광주(光州) |

[상세내용]
김치광(金致光)
1732년(영조 8)∼미상. 조선 후기 문신. 호는 충효당(忠孝堂)이고,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전라남도 광주(光州) 출신으로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김수신(金守信)이고, 조부는 김영복(金榮復)이며, 부친은 김도명(金道鳴)이다. 외조부는 기정기(奇挺夔)이다.
46세 때인 1777년(정조 1) 정유(丁酉)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23위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1786년(정조 10) 예조정랑(禮曹正郞)으로 빈궁도감낭청(殯宮都監郎廳)에 제수(除授)되었다. 『정조실록(正祖實錄)』에 1786년(정조 10) 정조(正祖)가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 김치광(金致光)은 익호장군(翼虎將軍)의 후손이니, 내직에 빈자리가 나면 의망하여 등용하라고 하교하였다.
또한 그는 벼슬을 버리고 귀향(歸鄕)하였으나, 왕의 특명(特命)으로 도백(道伯)의 칭호를 주고 파직(罷職)을 멈추게 하였다.
46세 때인 1777년(정조 1) 정유(丁酉)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23위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1786년(정조 10) 예조정랑(禮曹正郞)으로 빈궁도감낭청(殯宮都監郎廳)에 제수(除授)되었다. 『정조실록(正祖實錄)』에 1786년(정조 10) 정조(正祖)가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 김치광(金致光)은 익호장군(翼虎將軍)의 후손이니, 내직에 빈자리가 나면 의망하여 등용하라고 하교하였다.
또한 그는 벼슬을 버리고 귀향(歸鄕)하였으나, 왕의 특명(特命)으로 도백(道伯)의 칭호를 주고 파직(罷職)을 멈추게 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日省錄
광주시사
광주읍지
정조실록
日省錄
광주시사
광주읍지
정조실록
[집필자]
김동섭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