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인(申體仁)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2E0CCB4C778B1731X0 |
| 자(字) | 자장(子長) |
| 호(號) | 회병(晦屛) |
| 생년 | 1731(영조 7) |
| 졸년 | 1812(순조 12)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아주(鵝洲)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상세내용]
신체인(申體仁)
1731년(영조 7)∼1812년(순조 12).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자장(子長)이고, 호는 회병(晦屛)이다. 본관은 아주(鵝洲)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금뢰면(金磊面)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오봉(梧峰) 신지제(申之悌)의 후손으로, 부친은 신도만(申道萬)이다.
퇴보(退甫) 김낙행(金樂行)‧강와(剛窩) 임필대(任必大)‧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는 화장산(華藏山) 초당에서 공부하였으며, 30세 즈음부터는 경전(經傳) 및 천문지리(天文地理)‧의술(醫術)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이후 퇴계 학문을 이어받은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280여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호문학단(湖門學團)에서 도학(道學)을 연구하며 벼슬길에는 뜻을 두지 않은 채 공손히 행동을 삼가고 이치를 탐구하여 『숭경록(崇敬錄)』을 저술하였다.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손재(損齋) 남한조(南漢朝)‧구재(苟齋) 김종경(金宗敬)‧묵헌(黙軒) 이만운(李萬運)‧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 등과 교유하며, 호문학단의 6군자 중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금산서원(錦山書院)에 배향되었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오봉(梧峰) 신지제(申之悌)의 후손으로, 부친은 신도만(申道萬)이다.
퇴보(退甫) 김낙행(金樂行)‧강와(剛窩) 임필대(任必大)‧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는 화장산(華藏山) 초당에서 공부하였으며, 30세 즈음부터는 경전(經傳) 및 천문지리(天文地理)‧의술(醫術)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이후 퇴계 학문을 이어받은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280여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호문학단(湖門學團)에서 도학(道學)을 연구하며 벼슬길에는 뜻을 두지 않은 채 공손히 행동을 삼가고 이치를 탐구하여 『숭경록(崇敬錄)』을 저술하였다.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손재(損齋) 남한조(南漢朝)‧구재(苟齋) 김종경(金宗敬)‧묵헌(黙軒) 이만운(李萬運)‧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 등과 교유하며, 호문학단의 6군자 중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다.
금산서원(錦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