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위(李奎緯)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DDCC704B1731X0 |
자(字) | 평서(平瑞) |
생년 | 1731(영조 7)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한산(韓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이규위(李奎緯)
1731년(영조 7)∼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평서(平瑞)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출신지는 충청남도 공주(公州)이다.
증조부는 이형직(李亨稷)이고, 조부는 이수번(李秀蕃)이다. 부친 이사질(李思質)과 모친 권응(權譍)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3년(영조 39)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4년(영조 40) 예문관검열 재직 시절 사소한일로 원리(院吏)를 형벌하였다가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이후 서용되어 1775년(영조 51) 장령으로 재임하면서 군정‧과거‧사채의 폐단을 상소하였다. 1779년(정조 3) 곡산부사(谷山府使)가 되어 홍국영(洪國榮)에게 관직을 내려 줄 것을 청하였고, 1780년(정조 4) 돈을 횡령하였다가 전라남도 구례현(求禮縣)으로 귀양을 갔다. 그 후 풀려나 경기도 양근(楊根)에 은거하면서 촌사(村舍)를 사들이고 소나무와 소를 훔친 일로 함경남도 덕원부(德源府)에 유배되었다.
증조부는 이형직(李亨稷)이고, 조부는 이수번(李秀蕃)이다. 부친 이사질(李思質)과 모친 권응(權譍)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763년(영조 39)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4년(영조 40) 예문관검열 재직 시절 사소한일로 원리(院吏)를 형벌하였다가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이후 서용되어 1775년(영조 51) 장령으로 재임하면서 군정‧과거‧사채의 폐단을 상소하였다. 1779년(정조 3) 곡산부사(谷山府使)가 되어 홍국영(洪國榮)에게 관직을 내려 줄 것을 청하였고, 1780년(정조 4) 돈을 횡령하였다가 전라남도 구례현(求禮縣)으로 귀양을 갔다. 그 후 풀려나 경기도 양근(楊根)에 은거하면서 촌사(村舍)를 사들이고 소나무와 소를 훔친 일로 함경남도 덕원부(德源府)에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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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